* 전남 무안의 한 양파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수확한 양파를 망에 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는 구인 전쟁
작업시기 놓칠라 농가 ‘필사적’
불법체류 단속 강화도 악영향
중개소와 언성 높이는 일 많아 지자체 대책에도 어려움 여전
인삼 등 노지작물 정식 끝나 수요 일시적으로 감소했을 뿐
시설채소 농가는 부담 그대로 인건비 상승 억제 자구책도
농민신문 무안·해남·함평=이상희, 여주=최상구, 창녕·부산=김광동 기자 2023. 5. 31
◆양파·마늘 수확 한창인 남부지방 … 올해도 발 동동=“인력중개소에 전화하면 일단 사람 없다는 답부터 돌아옵니다. 비 예보라도 있으면 일당이 하루 사이에 2만∼3만원 껑충 뛰어요. 매년 이맘때만 되면 사람 못 구해서 농사 망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인력 걱정 없이 농사지을 날이 올까요?”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자 농촌 곳곳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인력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다. 양파와 마늘 수확에 고구마·고추 정식 등 밭작업은 물론 보리 수확, 모내기 등 논일까지 온갖 농사일이 이 시기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일손을 구하지 못해 작업시기를 놓치면 일년 농사를 망칠 수 있어 농가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인력 구하기라는 ‘총칼 없는 전쟁’에 내몰린다.
남종우 전국양파생산자협회장(전남 함평)은 “29일부터 만생종 수확을 시작해야 해서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봤는데 사람 보내준다고 속 시원히 답하는 인력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면서 “코로나19 시국이던 지난해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늘어난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손 확보가 쉽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외국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손부족 문제가 더 심화할 조짐을 보인다. 불법체류자를 쓰면 안되는 것을 알지만 일할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고용해왔는데, 단속이 강화되는 바람에 이마저도 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전남 무안의 한 농가는 “예전에는 밭으로 단속하러 나왔는데 요즘엔 저녁에 외국인들 숙소로 가서 일제히 잡아들인다고 하더라”면서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져버렸으니 올해 농사도 수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6월부터 만생종 양파 수확과 모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일손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인건비가 오를 수밖에 없고 농가들은 인건비를 주고 나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상황이다.
김종신씨(61·무안)는 “8264㎡(2500평) 규모로 양파농사를 짓는데 줄기 뽑는 데 12명, 대 자르는 데 15명이 필요하고 또 망에 담는 작업을 할 때도 그만큼의 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애써 농사지어 남 좋은 일만 시키니, 손해만 보지 않아도 다행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농가들은 돈을 더 주고도 사람을 구하지 못할까봐 속을 태웠다. 양파농가 김철호씨(59·해남)는 “외국인 근로자 수를 맞춰놓고 수확 준비도 다 해놨는데, 작업날 아침에 인부들이 나타나지 않아 전화했더니 다른 데서 돈을 더 준다고 그리로 갔다고 해 울화통이 터졌다”면서 “인건비도 벌써 14만∼15만원까지 올랐고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 걱정이지만 작업을 안할 수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마늘 수확이 한창인 경남 창녕도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올랐다. 농가가 인력업체에 지급하는 하루 일당은 남자 15만∼17만원, 여자 13만∼15만원선이다. 힘을 많이 쓰는 작업 특성상 젊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추가로 1만원을 더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인력난에 인건비 상승 등으로 해마다 상황이 나빠지다보니 농가들은 농작업이 끝날 때까지 전전긍긍하며 걱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인력중개소나 작업반장들과 크고 작은 시비가 붙고 언성을 높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산지 관계자는 “최근 해남에서 인력문제를 두고 다툼을 벌이던 인력중개소장이 농민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며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인력부족으로 농업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기 여주 불법체류 근로자 단속, 그 후=올 3∼4월 법무부가 4개 부처와 합동으로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극심한 농촌 인력난이 발생했던 경기 여주. 2개월여 지나 다시 만난 농가들은 외국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뜸해져 일손 구하기는 다소 완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준 여주농업인력수급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정부 합동단속이 4월말로 끝나고 농민단체 기자회견 이후 지자체에서도 농업인력수급 대책을 추진해 인력난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선 가남농협 가지공선출하회장은 “단속이 심할 때는 아예 외국인 인력을 구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 인력 구하기가 조금 쉬워졌다 해도 농가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린다. 특히 고구마나 인삼 등 노지작물 정식이 끝나면서 노지작물에 대한 일손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어든 게 인력난이 해소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정식과 수확이 연중 계속되는 시설채소 농가들의 인력난은 여전하다는 것이 농가들의 목소리다.
9917㎡(3000평)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농사를 짓는 이기정씨(50)는 “일손은 늘 부족하고 인력 구하기도 아직은 쉽지 않다”면서 “여주지역은 고구마나 인삼 등 노지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농가가 많아 외국인 인력 수요도 대농에 집중돼 규모가 작은 시설채소 농가가 일손을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임동선 여주농협 부추작목반장은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지난해까지 비닐하우스 20동(1만3223㎡·4000평)을 경작했으나 올해는 8동(5289㎡·1600평)으로 줄였다”며 “그나마 일손을 구하더라도 하루 일당이 지난해보다 10%가량 올라 한명당 12만∼16만원까지 줘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강서구 강동동 일대 산딸기농가들은 성출하기를 맞은 4∼5월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작목반 차원에서 과다하게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작목반은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인건비를 올려주면 결국 농가에 피해가 돌아온다는 점에 공감하고, 물가상승분 등을 감안해 지난해보다 5000원가량만 올려주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그 결과 작목반원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외국인 인력 확보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산딸기 수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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