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에 유리하게 짜인 농업분야 협상에 대한 농업계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IPEF의 주요 의제 가운데 공급망분야 협상은 이달 안에 조기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8~15일 싱가포르에서 제3차 협상이 열렸고, 27일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IPEF 장관회의’가 예정돼 있는데 이 회의에서 공급망분야 협상 타결을 선언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5월23일 IPEF가 출범한 지 만 1년 만에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IPEF는 크게 ▲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 등 4개 분야로 나눠 진행되는데 공급망분야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른 분야 역시 올해 안에 협상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IPEF를 주도하는 미국이 연내 성과 도출을 기대하면서 협상에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4월20일 “IPEF에서 올해 안으로 성과를 내는 것을 낙관한다”며 “IPEF는 기후변동과 격차 확대 등 세계경제가 직면한 과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IPEF가 우리 농업에 미칠 여파를 제대로 따져볼 새도 없이 농업분야 협상이 타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의 양자 FTA는 1차 협상 개시부터 협상 타결 선언, 비준 동의안 국회 통과를 거쳐 발효되기까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걸렸다. 반면 IPEF는 연내 모든 분야에서 타결한다면 출범 후 1년반 만에 협상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농업은 무역분야의 세부 의제 가운데 하나다.
자국산 농산물 수출을 확대하려는 미국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농업계는 IPEF 출범 초기부터 우려가 컸다. 실제로 IPEF 농업분야 협정문은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 완화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비롯한 농업생명공학기술 관련 협력 강화 등 농업계가 그동안 강하게 반대했던 통상 규범을 주요 내용으로 다룬 것이 밝혀졌다.
또 그 수준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는 비관세장벽을 완화한 것이 핵심이다.
IPEF 참여국 상당수가 CPTPP 가입국이다보니 농업분야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같은 목소리를 낼 국가가 많지 않다는 점도 불안을 키운다. IPEF 참여국(14개국) 가운데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절반(7개국)이 CPTPP 가입국이다.
IPEF 협상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는 “이전의 다른 통상협정은 농산물 수출국으로부터 자국 농업을 보호해야 하는 우리 정부와 일본이 비슷한 입장이었는데, CPTPP 가입국인 일본이 이번 협상에 있어서는 우리만큼 방어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당국과 농업계의 소통도 형식적으로만 이뤄졌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지금까지 산업통상자원부는 IPEF 공식 출범 후 주요 업종별 이해관계자와 IPEF 추진전략을 논의하는 ‘IPEF 민관전략회의’를 3차례 진행했다. 1차 회의에서 농업계를 제외해 논란이 일자 2차 회의부터는 농업계도 대상자에 포함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농민단체·국책연구기관 각각 1곳씩만 참여시켰다.
서진교 GS&J인스티튜트 원장은 “민관전략회의 참석자를 구성할 때 IPEF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업계를 더 배려했어야 했다”며 “회의 진행도 협상 내용을 참석자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논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다보니 농업계에서는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농업계는 IPEF 협상 타결 이후 국내 절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통상당국은 본격적인 협상 개시 전 관련 법령에 따라 ▲경제적 타당성 검토 ▲대국민 공청회 ▲‘IPEF 추진계획’ 국회 보고 등 국내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협상 타결 이후 ‘국회에 비준 동의 요청 여부’에 대해서는 합의문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IPEF 협상 타결에 따른 부정적 효과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 아니냐”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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