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칼럼] 대전시의 의지박약이 낳은 위기의 도매시장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편집국장 2023. 4. 28
국내 농산물 유통의 핵심 기지는 도매시장이다. 전국에는 중앙도매시장, 지방도매시장, 민영도매시장 등 총 49개의 도매시장이 운영 중이다. 도매시장의 기능은 수집과 분산이다. 전국의 농민들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출하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공영도매시장의 경우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물은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수탁거부 금지 조항이 있다. 농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농안법에는 도매시장법인의 제3자 판매 금지 조항도 있다. 이는 도매시장법인의 수익구조를 농민과 한 배에 태운 셈인데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물 가격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책정해 농민들이 수익을 얻을 때 도매시장법인도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즉 도매시장에는 농민들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들이 있고 도매시장 활성화는 농민들의 생계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도매시장에서 분산되는 농산물이 전국으로 배송되고, 도매시장에서 발견하는 가격은 전국 농산물 가격의 바로미터가 된다. 국내 도매시장은 국민들의 먹거리 소비 경제 활동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기 힘들지만 도매시장이 작동하면서 만들어지는 농산물 유통 생태계다. 국가는 이 생태계에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도록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도매시장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무 또한 있다.
최근 대전에 위치한 노은농산물도매시장의 중도매인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노은도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지만 개설자인 대전시가 번번이 어깃장을 놓는다는 주장이다.
2001년 노은도매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청과부류뿐만 아니라 수산물, 축산물을 거래하는 종합시장으로의 육성을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도 하소연한다.
도매시장이 개설된 이후 20년 이상 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수차례 축산 점포 입점이 필요하는 의견을 제시해 왔지만 갖가지 이유를 들어 묵살한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오히려 취재 기자들에게 대전시의 ‘모르쇠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유라도 알아봐 달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중도매인 등 복수의 유통인들이 말하는 역사를 보면 이렇다.
대전시는 2000년 10월 31일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건설에서 축협 입점을 확정했다. 2001년 오정동 도매시장에서 노은동 도매시장으로 이전 시 대전시가 도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농수축산물을 모두 취급할 수 있는 시장으로 만들 것을 약속했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2015년 4월 10일 대전시는 농식품부에서 도매시장 관련상가동은 농수산물 유통 시설에 해당하지 않음으로 대전축협과 수의계약이 불가하다고 통보해, 2016년 10월 6일 노은도매시장 유통인들은 농식품부를 찾아가 유권해석 질의한 결과 관련상가동은 유통시설에 해당됨으로 축협과의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아 대전시에 확인까지 해 주었음에도 대전시는 2017년 3월 16일 또다시 농식품부의 유권해석이 이미 나와 있음에도 노은도매시장 유통인들이 제출한 진정서 답변에 ‘농식품부 등 중앙부처의 유권해석 요청 및 조례 개정안 제출 등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참고’하라는 통탄할 답변을 했다.
이후 2017년 4월 14일 노은도매시장 유통인들이 제출한 탄원서 답변에도 ‘농식품부 등 중앙부처의 유권해석 요청 및 조례 개정안 제출 등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참고’하라는 답변은 모든 생산자, 소비자, 유통인들을 기망하고 우롱하는 답변만을 대전시는 반복했다.
2017년 12월 29일 대전시조례 개정을 제62조 5항에 ‘농수산물 관련상품 판매시설(신설)’만 추가하면 되는데 대전시는 ‘제62조의2(농수산물 유통시설의 편의제공) 시장은 법 제17조에 따라 개설한 도매시장 부류 외의 농수산물을 취급하는 유통시설에 대하여 법 제52조에 따라 생산자단체 등에 우선적으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로 조례를 개정해 노은도매시장에 오전 7시에 개장해 오후 8시에 폐점하는 축산물전문판매장을 입점시켰다.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에 입점한 축산물전문판매장과 노은도매시장 외부에서 판매하는 ㈜한백축산유통과 ‘잡채용 카레용 돈육’ 가격을 비교해 보면 ㈜한백축산유통은 100g당 650원에 판매하는 반면, 같은날 같은 용도의 고기를 노은도매시장 축산물 전문 판매점에서는 100g당 1,190원에 판매를 했다. 이처럼 이른바 소매점포로서 구색과 가격도 일반 소매점포 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다보니 도매 거래처는 물론 소비자마저도 노은시장을 외면하는 실정이다.
대전시의 그동안의 행태를 살펴보면 유통인들이 오해하기 딱 좋다. 노은도매시장의 유통인들을 취재하다 보면 개설자인 대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기망’, ‘우롱’, ‘거짓’이라는 단어 등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도대체 대전시는 유통인들과 스킨십은 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현재 도매시장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 전국의 많은 도매시장이 존폐 위기를 걱정할 정도의 큰 폭풍이다. 지방에 위치한 도매시장은 생존을 위해 기능의 변화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격변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유통인들과 개설자가 힘을 모아 소통하고 위기를 대처해 나갈 지혜를 모아도 모자란 판국이다.
상황이 어찌 됐든 20년간 유통인들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지박약’이라는 단어 말고 어떻게 더 근사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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