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안건으로 오른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민주당안, 임시 대증요법 불과
정부 전략작물직불제도 미흡
최소가격보장·생산조절 연계
다양한 품목 기준가격 도입 땐
작목쏠림 막고 소득안정 효과
농민신문 양석훈, 성지은, 홍경진 기자 2023. 4. 5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 의석 구성상 법안이 재의결될 가능성은 작다. 2021년 벼 수확기부터 이어진 지난한 논쟁이 ‘폐기된 법안’ 외에 무엇을 남겼는지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여야가 시장격리 의무화만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동안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전략작물직불제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새로운 대안 역시 제시되지 못했다. ‘양곡관리법 이후’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쌀농가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는 통계청 분석이 최근 나온 가운데, 쌀값은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다. 여전히 위태로운 쌀산업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점검하고 논의해야 할지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들었다.
◆논란의 핵심, 남는 쌀 관리 어떻게=양곡관리법 논란 속에서 여야는 시장격리 의무화 조항을 두고 국지전을 벌였다. 여야가 ‘의무화’ 세글자에 공세를 집중하는 사이 시장격리의 필요성과 실효성, 바람직한 초과 쌀 관리 방안은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시장격리가 쌀 공급과잉의 근본 해법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양승룡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시장격리 제도는 정밀하지 못한 사후적 조치로, 시장에서 격리된 물량은 언젠가 다시 시장에 출하되기 때문에 임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김명환 GS&J인스티튜트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꾸준한 시장 조성 정책을 통해 수요를 진작하고, 장기적으로 타작물의 기대소득이 쌀보다 크다는 확신을 농가에 줘서 쌀 감산을 촉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수급균형을 위한 사전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는 새로운 소비자 수요에 부합하는 품종 육성을 견인하고 고품질 쌀 생산을 늘려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주식용 쌀의 공급과잉을 줄이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호 단국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공공비축미 물량을 현행 35만t에서 50만∼60만t으로 확대하고, 막걸리 선호 추세와 노인빈곤율 등을 고려해 주정용과 복지용으로 (쌀 활용) 증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풍으로 일시적 과잉이 발생할 땐 시장격리가 필요하지만, 이때에도 현 시장격리 제도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김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 원안대로) 3% 초과생산이나 5% 가격 하락 때 의무적으로 대응한다면 정책 개입이 너무 자주 발생할뿐더러 통계 오차로 생긴 정책 실패가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면서 “시장격리 원칙에서 물량 기준은 폐지하고 가격하락률 5∼10% 범위에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시장격리에 앞서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쌀 생산·소비·재고 통계 수집과 분석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략작물직불제, 충분한가=쌀문제에 대한 정부 대안의 핵심엔 전략작물직불제가 있다. 논에 밥쌀 대신 밀·콩·조사료·가루쌀(분질미) 등 타작물재배를 유도해 밥쌀 생산은 줄이고 식량안보는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실효성엔 의구심이 붙는다. 우선 타작물 전환을 유도하기에 유인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전략작물직불금 수준이 과거 유사 사업에 비해 턱없이 낮다”면서 “1㏊당 단가가 430만원인 하계조사료를 제외하면 동계작물(50만원), 논콩·가루쌀(100만원) 등은 인센티브가 매우 약해 애초에 정책 설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정부의 2023년도 쌀 적정 생산 사업계획 추진 경과를 보면, 총체벼와 기타 작물에 대한 (전략작물직불제) 목표 달성이 미진한데 이는 해당 품목에 대한 소득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품목별로 단가가 높고 낮음을 떠나 소득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면 사업 동참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쌀 대신 심는 작물의 판로 문제도 제기된다. 서용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전략작물직불제 단가의 점진적 인상과 함께 안정적 판로 확보를 위한 정책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도 “생산된 밀·콩·가루쌀이 창고에 쌓이지 않도록 저장·가공·유통 기술 보급과 판로 확보가 절실하다”고 거들었다.
사업 지속성도 화두다. 이 위원장은 “전략작물직불제는 과거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생산조정제)이 그랬듯이 중단되면 (농가가 벼로 회귀하는 등) 역효과가 난다”면서 “지속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기대한 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정부는 소득 보전(강화)과 타작물 기계화율 제고 등 타작물 생산 기반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애당초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라는 어두운 진단도 나온다. 김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생산조정제 전례를 보면 그러지 않아도 타작물을 재배하려던 곳이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거나, 보조금이 중단되면 많은 농가가 수익성이 높은 쌀로 회귀하는 등의 이유로 사업 효과가 낮았다”면서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이 사업을 결국 포기한 데서 알 수 있듯 (전략작물직불제는) 비용에 견줘 감산 효과는 낮은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쌀농가 소득 위해 발상 전환 필요=쌀 수급균형이 늘 쌀값 안정화와 농가소득 제고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당장 지난해산 쌀은 시장에서 남는 양을 전부 들어냈는데도 가격이 반등하지 못했다.
이에 과거 변동직불제처럼 일정 수준 가격에 미달했을 때 정부가 이를 보전해주자는 의견이 대안으로 나온다. 양 교수는 “기존 변동직불제를 ‘생산조절형’으로 보완해 재도입하자”고 제안하며 “사전에 시장 여건에 따라 정부가 정한 휴경(전작 포함) 의무를 지게 하는 것으로, 쌀 소득을 일정 수준 안정적으로 보장하면서 사전적 수급조절도 가능해 정부의 직불금과 재고 관리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역시 “변동직불제 재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변동직불제는 기준가격이 정치적으로 결정돼 재정 소요가 계속 커지고 직불금이 쌀에만 쏠리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기준가격을 평년 산지가격, 평년 도매가격으로 하되 변동직불제를 쌀이 아닌 콩 등 전략작물, 나아가 쌀보다 소득이 불안정한 주요 채소까지 확대하면 농가가 쌀에만 매달리는 구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 교수 역시 “미국은 팜빌(농업법)을 기반으로 농가소득의 핵심이 되는 쌀·밀·콩·옥수수 등 기초 농산물에 대한 가격하락 대응 장치를 강화해왔다”면서 “우리도 주요 식량작물에 대해 농가경영과 소득의 안전장치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준가격 수준으로 쌀값을 보장하되, 이때 기준가격은 생산비 정도로 설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위원장은 “가격으로 보장하든, 지원금으로 보장하든 생산비를 보장해야 농가의 지속가능성이 생긴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쌀농가 수취가격이 생산비를 반영하도록 출하조정기구를 설치하자”면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농협중앙회, 지역농협 등이 일정액을 출연해 조성한 기금으로 생산비 이하 가격이 형성되면 부족분을 지급하고, 가격이 그 이상일 때는 일정 비율의 기금을 보충하자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윤석열정부의 약속대로 공익직불제 확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서 총장은 “영세 소농을 비롯한 쌀농가 소득 안정을 위해 소농직불금과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에 대한 면적직불금 등 농업직불금 단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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