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당국이 농축산물 할당관세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면서 국내 농업 생산기반이 입을 타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를 열고 5월부터 닭고기, 대파, 무, 칩 제조용 감자, 종오리 종란 등 7개 품목의 관세율을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5월부터 6월30일까지 현행 관세율이 20∼30%인 닭고기는 최대 3만t까지 무관세다. 현행 관세율이 각각 27%, 30%인 대파와 무도 같은 기간 할당관세(0%)가 적용된다. 대파는 5000t까지, 무는 할당관세 적용 기간에 수입되는 모든 물량이 무관세다. 종오리 종란은 6월말까지 10t, 칩 제조용 감자는 11월30일까지 1만3000t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한다.
농업계에선 이미 지난해 농축산물에 전례 없는 규모로 할당관세를 적용한 데 이어 또다시 농축산물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닭고기는 지난해 7월 긴급 할당관세 품목에 포함된 이후 올 1월부터 3월31일까지 적용 기간이 연장됐는데, 또 할당관세 물량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관세장벽이 낮아지면서 지난해 닭고기 수입량이 19만5896t으로 전년 대비 54%나 증가한 만큼 육계농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육계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사료값·유류대 등이 인상되면서 농가들의 생산비 부담도 높아졌는데 물가만 고려하고 생산자단체와 협의도 없이 할당관세를 또 적용한다니 당황스럽다”며 “그러지 않아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랜차이즈업체들이 외국산 닭다리·닭날개 등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국산 닭고기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프랜차이즈업계에서 국산의 입지가 더 좁아질 형국”이라고 말했다.
대파 역시 외국산 공세가 염려되긴 마찬가지다. 관세청에 따르면 현행 27% 관세율을 적용한 3월1∼20일 대파 수입량은 2391t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9.5%나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4월 양념채소 관측’을 통해 국내 가격 상승과 중국 대파 재배면적 증가로 이달 수입량이 전년 대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흐름에 비춰봤을 때 5월부터 무관세가 적용되면 수입량은 더욱 늘 것이라는 게 농업계의 입장이다.
정부가 실제 수급·가격 현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부는 2월 대파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9.7% 상승해 서민 부담이 증가했다며 할당관세 품목에 대파를 포함했다. 그렇지만 정작 대파 도매가격은 겨울 한파로 2∼3월 반짝 상승한 후 최근 내림세를 타고 있다. 3월 상순 서울 가락시장에서 대파 1㎏ 상품은 평균 경락값 2436원에 거래됐지만 이후 꾸준히 하락해 3일엔 1259원을 기록했다.
여기에다 할당관세가 적용되는 5∼6월 봄대파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농경연은 “지난해 정식기 가격 상승으로 경기·전북 지역 시설대파 재배가 늘면서 올해 봄대파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4.7%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대파는 소비가 줄어드는 데다 이제 점점 출하 지역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있고 무도 가격이 높은 상황이 아닌데 왜 할당관세를 적용하려는지 모르겠다”며 “지난해보다 생산원가가 26%가량 오르고 물류비도 급증한 점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수입만 늘리는 정부의 물가 정책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했다.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물가당국은 제주지역 한파로 올 3∼6월 무 출하량이 평년보다 28%나 줄 것이라고 할당관세 적용 이유를 댔는데 저온창고 저장 물량도 많고 시설하우스 재배면적도 적지 않아 수급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