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리청과의 대주주인 넘버원구리홀딩스가 법인 매각 의사를 밝힘에 따라 농산물도매시장에 사모펀드·대기업 등이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구리청과는 2019년 사모펀드인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와 웨일인베스트먼트가 285억 원을 투입해 인수했다. 인수 당시 박지윤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농산물 유통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4년 만에 재매각을 준비 중이다.
구리청과 관계자는 “매각금액 등 매각과 관련된 소문들은 주변의 예상일 뿐 현재 주관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처럼 경기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인 인수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격적인 매각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전했다.
구리청과 매각과 관련해 안영찬 구리농수산물공사 농산물류팀장은 “구리청과 매각은 공사 차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아직 확인된 세부 내용은 없다”며 “단기적인 수익 창출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도매시장법인을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이 들어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 끊임없이 이뤄지는 도매시장법인 매매
대자본에 의한 도매시장법인 인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동화청과는 2010년 동부팜한농이 280억 원에 인수한 이후 2015년 사모펀드 칸서스자산운용이 540억 원, 2016년 한일시멘트의 자회사 서울랜드가 600억 원에 인수했다가 2019년 신라교역이 771억 원에 인수하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약 10년간 500억 원의 시세 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대아청과 역시 2019년 호반그룹에서 560억 원에 인수했으며 지난해에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의 서부청과를 사모펀드 아이젠프라이빗에쿼티가 약 2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 공영도매시장이 대자본의 투기처로 전락했다는 우려와 오히려 도매시장법인의 효율성·투명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 눈앞의 수익만 바라볼 뿐 장기적인 투자 불가능해
농업인들과 도매시장 내 일부 유통인들은 사모펀드·대기업 등이 도매시장의 주체들이 일군 수익을 외부로 유출하고 도매시장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자본의 도매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편에서는 사모펀드의 유일한 목적이 수익 창출인 만큼 생산자·소비자를 위한 공영도매시장의 공공성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도매시장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들 역시 도매시장 내부에서 발생한 이익을 농업·도매시장에 재투자하지 않고 배당 등을 통해 외부로 유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2021년 가락시장의 동화청과는 50억 원, 중앙청과는 22억9600만 원, 서울청과는 14억1000만 원을 배당했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생산자를 위해 정부·지자체의 예산을 투입해 개설한 공영도매시장에서 자본의 시장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특히 사모펀드의 경우 산지 개발과 같은 도매시장법인의 역할을 외면하고 단기 수익 창출에만 힘쓴다”고 사모펀드·대기업 진출의 문제를 지적했다.
중도매인 역시 사모펀드·대기업 등의 도매시장법인 인수는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주장한다. 도매시장 특성상 현금 유동성이 좋아 모기업의 사업을 위한 자금원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모펀드의 경우 수익 상승에만 집중하다 보니 재투자에 소홀하다고 전했다.
나용원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도매시장법인을 인수한 사모펀드는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출하·판매 지원을 줄인다”며 “이는 도매시장법인의 역할에 반할뿐더러 도매시장 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 도매시장법인 체질 개선을 통해 효율성·투명성 높여
반면 사모펀드·대기업의 진출이 오히려 도매시장법인의 투명성 제고와 효율적인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모펀드의 경우 금융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하에 있고 투자자들 역시 주시하고 있는 만큼 회계의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경영 체계가 도입돼 효율적인 운영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본다.
더불어 사모펀드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이미지로 명확한 근거 없이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구리청과 관계자는 “도매시장법인은 농산물을 거래하는 업종으로 정보기술(IT)업체와 같은 급성장도, 소위 대박을 노린 투기도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투명한 회계로 개인 소유의 도매시장법인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구리청과의 최근 재무제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구리청과는 사모펀드에 매각된 2019년 이후로도 매년 20% 내외의 출하·판매 장려금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가락시장의 도매시장법인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28억 원 내외의 인건비에 큰 변동이 없어 무리한 구조조정은 없는 것으로 유추된다.
오세복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전무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합법적인 주식매매를 제한할 수는 없다”며 “경험상 도매시장법인을 인수한 대기업들이 수익 창출을 위해 이용자들의 서비스를 줄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합리적인 경영으로 효율성을 개선했다”고 대기업 진출의 긍정적인 영향을 피력했다.
# 충분한 논의 통해 제도 마련해야
이 같은 도매시장법인 매매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 구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김성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모펀드가 도매시장으로 유입되는 원인을 파악해봐야 한다”며 “도매시장법인이 과도하게 높은 수익을 내고 있지 않은지, 도매시장이 정말 공공성을 담보하는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실제 도매시장에서 공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생산자·소비자를 위한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개설된 도매시장이 몇몇 기업들의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도매시장법인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충분한 논의를 통해 자본의 과도한 진출을 제한하거나 사모펀드의 매매 차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등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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