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주일 근로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시간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그동안 농업분야에서는 농산물 수확·출하기 등 특정 시기에 업무량이 집중되는 미곡종합처리장(RPC)·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고역을 치렀다. 이에 RPC·APC 등 주요 경제사업장은 이번 제도 개편으로 그간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하 개편안)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위해 고용부는 지난해부터 근로시간 제도 개편 작업을 진행해왔다.
개편안의 핵심은 연장 근로 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분기(3개월)·반기(6개월)·연’을 새로 추가했다는 점이다. 기존 주 52시간제에서 연장 근로시간은 1주 단위로 최대 12시간만 가능했다. 1주에 연장 근로를 10시간 했다고 해서 남은 2시간을 다른 주로 당기거나 미룰 수 없다. 개편안은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에 맞출 수 있다면 연장 근로 단위를 1주뿐만 아니라 월이나 분기·반기·연 단위 가운데 노사가 합의하에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연장 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로 노사가 합의하면 1개월의 근로시간 한도는 208시간(4주×52시간)이 된다. 이 한도 내에서 일이 많은 주에는 일이 없는 주의 연장 근로시간을 당겨 사용할 수 있다. 일이 몰리지 않는 1·4째주에는 연장 근로 없이 40시간씩 근무하고 업무량이 집중되는 2·3째주에는 각 64·60시간을 일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한달간 주 평균 근무시간은 51시간이다.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조치로는 ‘근로시간 11시간 연속 휴식’ 또는 ‘1주 64시간 상한’을 선택하도록 했다.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하지 않는다면 근로시간은 1주 최대 64시간을 지켜야 한다.
개편안은 농산물 수확기에 맞춰 일이 집중되는 RPC·APC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7월 주 52시간제가 전면 도입된 이후 RPC·APC에서는 농산물의 계절성에 따라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릴 수밖에 없는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해달라고 주장해왔다.
RPC의 경우 벼 수확철에 맞춰 9∼12월에는 주 근로시간이 최대 70시간에 달할 정도로 작업량이 늘어난다. 반면 나머지 1∼8월은 연장 근무를 하지 않아도 법정 근로시간을 무리 없이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업무 부담이 적다.
APC도 마찬가지다. 취급 품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과수·채소 수확철에 근로시간이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그 외에는 업무량이 확연히 줄어든다. 충북지역의 한 APC 관계자는 “복숭아 수확기 때는 주 60시간 가까이 일하지만 일이 없는 계절에는 하루 8시간 근무도 의미 없을 때가 있다”며 “바쁠 때와 한가할 때가 분명하게 나뉘는 만큼 개편안을 적용하기는 쉬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론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을 그대로 법제화할지는 미지수다. 고용부는 개편안 시행을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4월17일까지 입법예고 한 후 6∼7월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편안에 대해 국회 과반을 차지한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개편안은 농업분야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기기도 했다. 고용부는 개편안을 통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1차산업 등 ‘근로시간 적용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재 근로기준법 제63조에 근거해 농축산어업분야 근로자는 근로시간·휴게·휴일을 적용받지 않는다.
농축산어업분야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된다면 인력을 고용하는 농가들은 휴일, 연장 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생겨 부담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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