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밀 등 지역 생산 농산물의 우선 구매를 규정한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사업자 차별에 해당한다며 규제에 나설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우리밀 생산단지에서 밀을 수확하는 모습. 농민신문DB
“경쟁 제한으로 사업자 차별”
우리밀·전통주 육성지원 등
지자체 조례 개정 추진키로
전문가들 비판 일성
“농산물직거래법에 어긋나고
전략작물직불제와도 엇박자”
농민신문 이민우 기자 2023. 3. 7
공정거래위원회가 급식시설 등이 지역 생산 농산물을 우선 구매토록 한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사업자 차별에 해당된다며 규제에 나설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2021년에도 학교급식에서 지역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한 조례 개정을 추진하다 농업계 반발로 철회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지나치게 시장 논리로 농업문제에 접근한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공정위 “지역 생산 농산물 우선 구매는 사업자 차별”=공정위는 최근 ‘2023년 지방자치단체 경쟁제한 및 소비자이익 제한 조례·규칙 개선 추진’ 대책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그 이유로 지자체의 경우 지역 소재 사업자 등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조례·규칙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가 운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다른 지자체들도 이같은 조례·규칙을 모방해 유사한 규정을 도입함으로써 지역 경쟁제한이 전국적인 양상으로 확산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올해 지자체와 협의해 경쟁제한 및 소비자이익 제한 조례·규칙 196건을 개선과제로 선정해 개정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공정위가 발표한 개선과제 가운데 지역 생산 농산물 우선 구매 권장 조례와 지역전통주를 건배주로 우선 사용토록 권장하는 조례 등이 사업자 차별 사례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구체적인 예시로 든 조례는 ‘우리밀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와 ‘지역전통주산업 육성 지원에 관한 조례’ 등이다.
해당 조례는 “지자체장이 우리밀의 생산장려와 소비촉진을 위해 집단급식소를 운영하는 관계기관장에게 우리밀·우리밀가공품 등을 우선 구매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과 “지자체장은 전통주의 소비촉진을 위해 각종 행사 등에서 지역전통주가 우선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등 ‘우선 사용’ 조항을 포함한다.
공정위는 이같은 조항들이 사업자간 경쟁 수단·유인을 제한하는 사업자 차별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우선 사용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법적 근거 무시한 조치”…농산물·전통주 우선 구매는 지역살리기 일환=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이같은 지역농산물의 우선 사용을 규정한 지자체 조례들이 법적 근거에 따라 정당하게 제정됐음에도 무리하게 삭제 등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지역농산물 이용촉진 등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농산물직거래법) 제14조는 “지자체장과 공공기관장은 해당 지역 또는 소재지에서 농산물에 관한 조달계약 등을 체결하려는 때 해당 지역의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농산물직거래법에 공공부문에서 농산물을 조달할 때 지역산을 우선하도록 하는 조항이 규정돼 있다”며 “법적 근거가 명확히 있음에도 공정위가 이같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경쟁 논리로만 접근해 고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공정위의 판단이 전략작물직불제 등 밀 생산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부처간 정책이 엇박자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는 전략작물직불제는 겨울철에 식량작물이나 조사료를 재배하면 1㏊당 50만원을 지급하고, 겨울철 밀·조사료와 여름철 논콩·가루쌀(분질미)을 이모작하면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정부 정책간 정합성이 있어야 정책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며 “이번 공정위 판단은 식량 자급률 제고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맞지 않는 것으로, 지나치게 형식 논리에만 치중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소멸과 기후위기 등의 극복방안으로 로컬푸드 정책이 제시되는 상황에선 오히려 이같은 지자체 조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는 지자체 조례는 막힌 판로를 뚫어줘 로컬푸드 정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지역농산물 우선 구매 조항은 지역주민의 권리이며, 시민운동의 결과라는 점에서 공정위의 판단은 일종의 월권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도 “지역소멸을 막으려면 일단 지역을 널리 알리는 홍보활동이 필요한데, 지역농산물이나 지역전통주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전통주시장이 1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현시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로 전통주 소비를 촉진하는 지자체 조례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개선대책을 발표한 공정위 시장구조개선과 관계자는 “농식품부와 협의해 개선과제 등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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