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공급과잉 구실로...농업계 ‘불안’ 확산
농지 연 1만5000㏊씩 사라져
농업진흥지역 비중 절반 불과
예산 들여 조성 후 해제 ‘모순’
4년후 식량자급률 55% 목표
최소 150만㏊ 필요한데 부족
농민신문 오은정 기자 2023. 2. 27
쌀 공급과잉을 구실로 농지 규제를 풀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면서 농업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농지면적은 규제를 완화하지 않아도 이미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오히려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적정 농지면적을 유지하려면 지금보다 늘릴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지면적 감소 가속화 … 연평균 1만5000㏊=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해소가 농업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이 틈을 타 농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부 의원들은 “쌀 수요가 줄면서 쌀이 남아도는데 농업진흥지역을 풀어서 쌀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농지면적은 이미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지난 20년(2002∼2021년)간 줄어든 농지면적은 31만6000㏊에 달한다. 2002년 186만3000㏊에 이르렀던 농지면적은 2021년 154만7000㏊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감소세는 최근 들어 더 가파르다. 과거 15년(2002∼2016년) 연평균 농지면적 감소율은 0.9%였는데 최근 5년(2017∼2021년)에는 1.2%로 가속화하고 있다.
전용이 까다롭다는 농업진흥지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농업진흥지역 농지면적은 2002년 92만1000㏊에서 2021년 77만4000㏊로 14만7000㏊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농업진흥지역 밖 농지의 감소면적인 16만9000㏊와 큰 차이가 없다.
◆농업진흥지역, 쌀 공급과잉과 무관= 일각에서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농지 규제 완화를 내세우는 이유는 농업진흥지역의 약 90%가 논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진흥지역이 전체 농지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불과하다. 또 쌀 공급과잉은 단순히 농지면적이 많다고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주장이 힘을 얻어 심지어 정책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기는커녕 농지전용이 가속화하면서 농지가 감소하는 속도만 빨라졌다.
정부는 2015년 쌀 공급과잉이 문제가 되자 이듬해 ‘농업진흥지역 정비방안’을 내놓고 10만㏊에 달하는 농업진흥지역을 해제·완화했다. 농업진흥지역의 규제를 푼다는 건 사실상 농지전용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경지를 정리하는 작업 등을 통해 대규모로 넓게 퍼져 있어 아파트·주택 등을 지으려는 개발업자들이 줄곧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지전용 면적은 2016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늘었다. 2015년 1만2303㏊였던 농지전용 면적은 2016년 1만4145㏊, 2017년 1만6296㏊로 늘어나더니 2021년에는 1만9435㏊에 달했다.
결과적으로는 농업진흥지역 내 논이 아닌 밭 면적이 줄었다. 농업진흥지역 내 밭 면적은 2017년 9만8000㏊에서 2021년 8만9000㏊로 10%(9000㏊) 감소했다. 개발업자들이 논보다 밭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농업진흥지역을 조성하고는 거꾸로 농업진흥지역을 해제·완화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가 지금까지 우량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은▲경지 정리(10조8000억원) ▲배수 개선(7조원) ▲기계화 경작로 확장·포장(3조3000억원) 등 약 40조원에 달한다.
◆식량안보 위해 농지 최소 150만㏊ 필요= 농업진흥지역 규제 완화는 식량안보도 흔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을 통해 2027년까지 식량자급률(조사료 제외) 55.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러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농지는 최소 150만㏊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감소 추세라면 농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5년간 연평균 농지 감소율(1.2%)을 적용해 추산한 2027년 농지면적은 144만2000∼147만6000㏊다. 최후 방어선으로 잡은 농지면적(150만㏊)보다 많게는 5만8000㏊가 적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 규제를 푼다면 농업 생산에 주는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미 농업진흥지역 농지면적은 전체 농지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로 적다. 일본은 전체 농지면적 439만7000㏊(2019년 기준) 가운데 우리의 농업진흥지역인 ‘농용지구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91.0%(400만2000㏊)에 달한다.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은 “규제가 적은 농업진흥지역 바깥의 농지면적이 전체 농지면적 비중의 50%나 차지하는 상황에서 농업진흥지역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납득하기 힘들다”며 “정부는 농업진흥지역 비중을 일본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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