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땅에서 농사짓고 세금까지 낸 세월이 얼만데, 임대차계약서 없이는 직불금을 못 준다니 포기했죠, 뭐.”
전북의 시설원예농가 김모씨는 올해도 1322㎡(400평) 규모의 임차 농지에 대해 기본형 공익직불금을 신청하지 못했다. 직불금 신청에 필요한 임대차계약서가 없어서다. 그는 오래전 농지 소유주가 갑자기 사망한 후 땅을 물려받은 자녀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임대차계약서를 쓰지 못했다. 그러다 2021년부터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해야 기본형 공익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되면서 임차 농지에 대한 직불금을 아예 포기했다.
김씨는 “주위에 종중이나 소유주가 여러명인 땅은 임대차계약서를 쓰지 못한 농가가 적지 않다”며 “예전엔 임차 농지의 경작사실확인서를 신청 서류로 내면 직불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젠 똑같이 농사를 지어도 직불금을 받지 못하니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2023년 기본형 공익직불금 신청이 시작된 가운데 올해부터는 공익직불제의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2017∼2019년 중 직불금을 받은 이력이 없는 농지’도 기본형 공익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농가의 절반에 달하는 임차농가들 사이에선 아직도 제도에 구멍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문제는 임대차계약서다. 농지 소유자의 사망이나 행방불명, 해외 거주 등으로 소유권자가 불확실한 땅은 현실적으로 임대차계약을 맺기 어렵다. 소유관계가 복잡한 종중 땅이나 공동 소유 농지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서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년부터 기본형 공익직불사업 시행지침에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뒀다. 소유권자가 불확실한 농지는 경작자의 재산세납부서나 재산세납부자와의 계약서 등을 제출하면 임대차계약서를 갈음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종중 소유 농지도 실경작자에게 땅을 임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종중 회의록을 임대차계약서 대신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지침대로라면 김씨 같은 임차농들도 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실상 임대차계약서가 없는 임차 농지는 농업경영체 등록정보에 등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형 공익직불금 지급 대상은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농업경영체 등록정보에 등록된 농지로 정해져 있다. 농업경영체 등록정보에 임차 농지를 등재하려면 임대차 현황 내용이 담긴 농지대장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농지대장에 임차 농지를 신고하려면 결국 임대차계약서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농업경영체 등록을 담당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임대차계약서를 통해 ‘농지법’상 적법한 임차 농지만 농업경영체 등록정보에 등재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농지법’은 징집·질병 등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한 사적인 임대차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1996년 1월1일 이후 취득한 농지는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계약을 맺어야 한다.
농관원 관계자는 “지난해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도 불법 임차 농지의 직불금 수급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면서 “불법 임대차와 직불금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선 임대차계약서를 바탕으로 적법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합법적인 임대차계약을 맺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면사무소의 직불금 담당자는 “농지은행을 통해 임대차계약을 맺는 데 번거로움을 느끼거나 8년 이상 자경 때 양도소득세를 감면받는 조항 때문에 임대차계약서를 써주지 않는 농지 소유자들이 여전히 있다”며 “불가피하게 불법 임차농으로 몰린 농민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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