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뛰자 면세유도 껑충
정부 보조금 주지만 예산 미미
시설원예농가 살림살이 ‘최악’
전기·비료마저 올라 경영 비상
농업구조 장기적 개선책 필요
‘농산물 고부가가치화’도 시급
농민신문 오은정 기자 2023. 2. 13
24일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된다. 당초 예상과 달리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은 우리 농업·농촌에도 큰 타격을 줬다. 러·우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위기와 공급망 교란으로 지난해 농가들의 살림살이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러·우 전쟁으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전례 없이 상승했다. 국제유가는 러·우 전쟁이 발발한 직후 폭등하며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졌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러·우 전쟁 전인 2022년 1월 1배럴당 70달러 후반대를 유지했던 두바이유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같은 해 3월에 12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이어 6월에도 110달러대를 유지하던 국제유가는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야 안정세를 보였지만 전쟁이 지속되는 탓에 변동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농가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농업용 면세유 가격도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트랙터·콤바인 등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는 농가나 냉난방이 필수인 시설원예농가는 전년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기름값을 부담해야 했다. 오피넷(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면세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7월에 1ℓ당 1506.59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전년 동기(809.30원)와 비교하면 86% 오른 것이다.
특히 면세 등유는 지난해 8월부터 면세 휘발유 가격을 역전할 정도로 가격이 크게 올랐다. 국제적으로 등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탓에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에 등유로 가온하는 시설원예농가들은 급격한 비용 증가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면세유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농민들은 유가 상승분을 그대로 감내했다. 정부는 러·우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크게 오르자 지난해 휘발유·경유에 붙는 세금 인하폭을 20%에서 30%, 30%에서 37%로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미 세금이 면제된 면세유는 유류세 인하 혜택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최근 유류세 인하 효과로 가격이 전년 수준으로 떨어진 과세유류와 달리 면세유 가격은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뒤늦게 정부는 시설원예농가를 대상으로 유가연동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지만 예산은 다른 업종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시설원예농가에 지급하는 유가연동보조금 예산은 총 151억원이다. 반면 해양수산부가 어민들에게 지원하는 ‘어업인 면세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예산은 464억원, 국토교통부가 화물자동차·노선버스·택시에 지급하는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예산은 355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기요금도 덩달아 올랐다. 정부는 전기 생산에 사용하는 석유·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 가격이 올랐다면서 러·우 전쟁 이후 전기요금을 4차례 인상했다. 이에 따라 올 1분기 농사용 전기요금(전력량요금, 을 저압)은 지난해 1분기보다 47%나 상승했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 전기요금을 추가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러·우 전쟁 여파로 농약·비료와 사료 등 농자재 가격도 크게 오르며 농가들 부담을 더했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2년 농가 판매 및 구입가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영농자재비와 사료비는 전년 대비 각각 29.2%·21.6% 상승했다. 비료비는 전년 대비 무려 132.7% 오르면서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이에 정부는 무기질비료는 가격 인상 차액의 일부를, 사료는 구매자금을 저리융자로 지원하고 있다.
올해 여건도 좋지 않다. 러·우 전쟁이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다보니 올해도 원자재 가격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 지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리 농업의 고비용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인건비·토지용역비가 높은 우리나라 농업구조의 특성상 생산비용이 기본적으로 높은 데다 생산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료·에너지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전쟁 등 외부 조건에 취약하다”며 “정부는 ‘사료가격안정기금(가칭)’을 마련해 사료값 인상 요인에 장기적으로 대비하고, 농가들은 규모화·조직화를 통해 생산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농업 생산비를 미국·호주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일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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