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서귀포에서 겨울무를 재배하는 현승민씨가 한파로 언피해를 본 겨울무를 잘라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무·브로콜리 등 언피해 속출 제주 신고면적 3370㏊ 달해
상품성 저하물량 격리 시급
성주 참외 기형과 잇단 발생
해남·진도 배추농가도 ‘울상’
농민신문 심재웅 기자 2023. 2. 8
1월 중하순 설날을 전후해 한반도를 덮친 한파와 폭설이 제주와 남부지방 채소농가에 큰 상흔을 남겼다. 제주에서는 겨울채소 가운데 겨울무가 가장 큰 피해를 봤고, 전남 해남·진도 등지에서는 월동 중인 겨울배추가 꽁꽁 얼어버렸다. 참외 주산지인 경북 성주에서는 줄기에 달린 잎이 누렇게 변하고 기형과가 발생했다.
제주도가 1월26일부터 농가로부터 접수한 농작물 한파 피해 현황에 따르면 4일 기준 피해 신고 면적은 3370㏊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겨울무가 2250㏊로 전체 신고 면적의 66.7%에 이르며 양배추(179㏊)·브로콜리(142㏊)·콜라비(7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겨울무 재배농가 현승민씨(55·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는 “한파 후 기온이 오르며 스펀지현상(무가 얼었다 녹으면서 물러지는 현상)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면서 “올겨울 한파에 서너번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다 아예 회복 불능 상태가 된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번 한파는 영하권 기온이 오래 지속된 데다 눈이 많이 오지 않아 겨울무가 추위에 그대로 노출돼 피해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겨울무 전체 재배면적(5448㏊) 가운데 35%가량은 수확이 끝났다. 생육이 진행 중인 곳은 향후 날씨나 관리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생육이 끝난 곳은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제주도는 겨울채소 언피해가 한파 직후 보름가량 지나야 확실히 드러나는 점을 감안, 기존 4일로 예정했던 농작물 한파 피해 접수 마감일을 13일로 연장했다. 1만2562㎡(3800평) 규모로 겨울무를 재배하는 강철은씨(69·대정읍 보성리)는 “수확을 목전에 두고 언피해를 봐 너무 허탈하다”며 “잎이 노랗게 말라버린 밭은 피해가 심각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언피해로 상품성이 떨어진 무가 시장에 출하되면 정상적인 무 시세에도 악영향을 주며 자칫 시장이 혼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무 20㎏ 상품 한상자의 평균 가격은 1월31일 1만5778원에서 2월6일 1만1587원으로 26.5% 급락했다. 한파 이후 상품성이 떨어진 물량의 시장 반입과 이에 대한 우려 등이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범 농협경제지주 제주본부 유통지원단장은 “무는 외관으로 피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앞으로 언피해로 품위가 떨어진 물량이 시장에 반입되면 시세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하다”고 전망했다.
이에 도 농정당국이 ‘한파 피해 포전정리 지원사업’을 추진해 비상품 겨울무를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언피해를 본 무와 정상적인 무가 혼재돼 가격 지지세가 흔들리고 있다”며 “정상적인 무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의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씨도 “행정이 신속히 시장격리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농가도 언피해를 본 물량은 아예 출하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양행석 도 원예진흥팀장은 “농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며 “신속하게 정책 결정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참외 주산지인 성주도 한파 피해를 봤다. 성주지역은 1월18일부터 흐린 날이 이어지다 설 연휴부터 영하 10℃ 이하 강추위가 지속됐다. 1월25일 오전엔 영하 18℃ 안팎까지 기온이 급강하했다. 한낮에도 영하권을 벗어나지 못한 한파가 지속되면서 대부분 무가온으로 재배하는 참외는 생육에 치명타를 입었다.
참외 하우스 15동을 경영하는 안석근씨(50·벽진면 운정리)는 “과실이 한창 크고 모양이 잡히는 시기에 강추위가 일주일간 이어지면서 줄기에 달린 잎이 누렇게 변했다”면서 “이뿐만 아니라 하우스 한동당 과실의 절반가량에서 기형과가 발생해 수확은커녕 대부분 따서 버렸다”고 씁쓸해했다.
농가 피해가 현실화하면서 산지공판장을 운영하는 농협에도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김기훈 성주참외원예농협 공판장장은 “예년 같으면 1월말께부터 농가 출하가 조금씩 늘어나는데 올해는 2월 상순에도 본격 출하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김 장장은 “한파 피해 농가에서 다시 순을 내고 수정하려면 통상 1주일에서 보름 정도 소요되는데 그만큼 출하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면서 “1화방 물량이 2월 중하순 이후 3월초에 몰리면 홍수출하와 그에 따른 값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침체로 참외 소비부진도 우려된다. 강도수 한국참외생산자협의회장(성주 월항농협 조합장)은 “설 전후 흐린 날과 한파 탓에 1화방은 생육저조와 과실 불량이 겹쳐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고물가와 경기침체 등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으로 참외 소비가 둔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남 해남·진도 등지에서 월동 중인 겨울배추도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해남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한 농가는 “원래 겨울배추는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겨울을 보내지만 이번에는 너무 추웠던 탓에 꽁꽁 얼어버렸다”면서 “요 며칠 날이 풀려 밑동을 잘라보니 하얀색을 띠어야 할 뿌리가 노르스름하게 변해버렸다”고 말했다.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산지관계자들은 한파로 겨울배추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장철 수요부진으로 출하가 뒤로 밀려서 밭에 남아 있는 겨울배추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배추 특성상 얼었다 녹았어도 상품성이 다소 떨어질 뿐 출하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오히려 시장가격이 하락해 농가들의 피해만 커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온다. 한파로 품위가 떨어진 데다 한번 얼었다 녹은 배추는 저장성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김경채 전국배추생산자협의회장(해남 황산농협 조합장)은 “배추를 수확해 시장에 출하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제는 창고에 저장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달에 모두 수확해 소비해야 하는 만큼 홍수출하로 다시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서귀포=심재웅, 성주=유건연, 해남=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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