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제조·유통·판매 전과정 디지털전환 속도
CJ제일제당 배추 등급 선별에
AI 투입시켜 정확도 88% 넘어
풀무원도 10개 공장 모니터링
최적 재배조건 데이터팜 확대
동원F&B선 참치 이물질 검출
참치떼 탐색에 AI드론 쓰기도
매일경제 송경은 기자 2023. 2. 1
배추를 살펴보면 잎이나 밑동에 깨알같이 작은 흑색 반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깨씨무늬'' 증상이다. 깨씨무늬가 나타난 배추는 섭취해도 안전이나 건강에 문제가 없지만 미관상 좋지 않은 탓에 무늬 없이 깨끗한 배추에 비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배추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수작업으로 배추의 품질 등급을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사람의 감각에 의존하니 개인별 편차가 생겼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포장김치를 제조·판매하는 CJ제일제당은 그동안 사람이 수작업으로 해왔던 김치용 배추 등급 선별을 자동화하기 위해 최근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도입했다. 등급별로 다양한 배추 잎 사진을 학습한 AI가 컴퓨터 비전(물체나 상황을 시각적으로 식별하고 해석)을 통해 배추를 스캔한 뒤 해당 배추가 어떤 등급인지 분류해주는 것이다. 배추 등급 분류 정확도는 지난해 88.3%를 넘어섰다.
CJ제일제당이 도입한 AI 시스템은 깨씨무늬 증상 외에도 ''추대(배추 잎 옹이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자라는 현상)'' ''불소 결핍(잎자루 중간 부분 일부가 흑갈색이 되는 현상)'' ''석회 결핍(배추 속이 물러지는 현상)'' 등을 가려낼 수 있다. 구경민 CJ제일제당 AI랩 팀장은 "AI 시스템을 활용하면 제품 생산 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을 줄이고 품질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정량화된 분류 기준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등급 선별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정보기술(IT)과 거리가 먼 듯했던 식품업계가 최근 디지털 전환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식품의 제조·유통·판매 전 과정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여기서 나오는 유용한 정보를 활용하면 생산 효율과 제품의 품질을 높일 수 있으며 나아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많은 기업이 신년사에서 ''디지털 전환''을 경영 화두로 올린 것도 대내외 환경이 열악한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전략이 디지털 전환에 달려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식품업계의 다양한 AI 시스템 도입이 두드러진다. 활용 분야는 크게 4가지다. △제품 수요예측을 통해 재고관리와 제품 공급 효율화 △인터넷 웹사이트·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타난 소비자 의견을 분석해 제품 개발·개선에 활용 △원자재 가격 변동 데이터를 이용한 거래(구매) 전략 수립 △컴퓨터 비전을 활용한 상품 품질 등급 분류 등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고품질의 신뢰도 높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나볼 수 있게 된다.
풀무원은 AI 자연어 처리 기술과 음성인식 기술을 토대로 온라인 쇼핑몰과 SNS 등에 올라온 고객 리뷰와 고객센터로 걸려온 불만 전화 음성을 분석해 제품에 대한 맛과 서비스 평가 데이터를 집계하는 ''VOC·리뷰 분석 시스템''을 지난해 6월 식품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간편식 제품의 염도와 매운 정도, 두부의 무르고 단단함 정도 등에 대한 고객들의 정성적인 평가를 세밀하게 분석해 제품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시스템은 신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을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지난해 8월 풀무원은 전국 10여 개 생산공장에 대한 생산 현황 데이터를 원격으로 통합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스마트 센서를 통해 음성공장에 온습도 등 최적의 콩나물 재배 조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팜도 확대하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충북 음성공장의 콩나물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원F&B은 자사 참치 캔 ''동원참치'' 제품 내 뼈나 비늘 등 이물질을 검출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해 품질 경쟁력을 높였다. 기존 X선 설비에 20만장 넘는 참치 뼈 이미지를 학습한 AI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육안이나 X선으로 검출하지 못한 아주 미세한 크기의 뼛조각까지 검출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동원참치 등 제품 생산을 위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참치를 어획하고 있는 동원산업은 육안에 의존해왔던 횟감용 참치 품질 등급 선별에 최근 AI 시스템을 적용했다. 원양에서 어획된 참치는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신선도 유지를 위해 영하 60도 이하 저온에서 급속 냉동된 채 유통된다. 이때 냉동 상태에서 품질 등급을 선별하기 위해 꼬리 부분을 폭 5㎜ 이내로 절단해 절단면만 해동·세척한 뒤 이를 보고 등급을 나눈다. 동원산업이 개발한 ''참치 품질 등급 선별 AI 모델''은 꼬리 절단면 이미지 1만개 이상과 등급 기준 등을 학습해 절단면 이미지만 있으면 색상·무늬 등에 따라 A·B·C등급으로 자동 분류한다.
동원산업은 지난해부터 참치떼(어군) 이동 경로를 탐색하고 예측하는 데도 AI 드론(무인기)을 활용하고 있다. 먼 바다에서 드론을 띄워 새떼와 백파(파도) 등 주변에 어군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촬영하고 실시간 영상을 AI로 분석해 관제기기로 알림을 보내는 방식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기존에는 선망선 내에 설치된 높은 구조물(코파)이나 헬리콥터에서 육안으로 어군을 탐지해왔는데 이 같은 조업 방식은 사고 위험이 높고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며 "반면 드론은 안전하고 경제적인 운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선박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탐지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신호까지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유통 전문회사 hy(옛 한국야쿠르트)는 1200여 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자사몰 ''프레딧''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맞춤형 상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복 검색어나 구매 이력 등을 동일 표본집단의 빅데이터와 연동시켜 맞춤형 상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또 자사 프레시매니저(배송기사)의 활동 패턴을 지역별로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자체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통해 정확한 배송 일정을 안내하는 등 고객 편의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