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국고 지원을 위한 자연재해 피해액 산정 기준에 농작물·가축은 여전히 제외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석열정부가 국정과제로 ‘농작물 재해복구비 현실화’를 제시한 만큼 자연재해에 따른 농가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자연재해 증가로 인한 농가 경영위험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자연재해 발생 시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에 농작물·가축 피해는 반영되지 않음을 지적하고 관련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 각종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행정안전부는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비용 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복구 지원을 위한 피해액을 산정한다. 시·군·구별로 피해액을 집계하고 이를 기준으로 이재민 구호와 공공·사유 시설 복구에 드는 비용을 국고로 지원한다. 문제는 피해 집계액에 농작물·가축·농기계 등의 손상은 제외된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에는 주택·건물·도로·농경지·축사 피해만 포함돼 있다.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자연재해 발생 지방자치단체의 피해액이 일반 기준의 2.5배를 넘어서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데 농작물·가축 등은 피해로 잡히지 않아 농촌 지자체가 실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우려도 있다. 현재 농작물 피해는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 예산과 지방비를 통해 일부만 지원되는 실정이다.
최영운 농협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만약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지자체의 피해가 농작물·가축에 국한돼 있다면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특별재난지역에는 재난구호와 복구를 위한 국고가 추가로 지원되는데 농촌은 제대로 된 보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와 달리 농작물의 자연재해 피해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부처 합동 이상기후보고서(2016∼2020년)’에 따르면 농작물 각종 재해 피해면적은 2016년 3만9040㏊에서 2020년 20만2249㏊로 5배 넘게 늘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 6건 계류돼 있지만 진척을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시 농작물과 가축 등의 농업 피해를 산정해 피해금액에 반영하도록 하는 개정안 6건과 재난지역에 대한 국고보조 등의 지원에 피해작물 경영비를 추가하는 개정안이 2건 발의돼 있다. 윤석열정부가 120대 국정과제에 농가 경영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재해복구비 현실화’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에 농작물 피해액 반영’ 등을 포함한 만큼 새해에는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연구위원은 “재해복구비 현실화는 농업계가 수년 전부터 정부에 요구해온 사안이지만 농작물 피해액 산정의 어려움, 행정비용 등을 이유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며 “집중호우·태풍·가뭄 등이 매년 번갈아 가며 발생할 정도로 농촌 자연재해가 상시화된 만큼 올해는 관련 논의가 진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농식품부의 예산 지원도 현실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자연재해 피해를 본 농가는 농약대(5개 항목)·대파대(20개 항목)만 현행 실거래가의 100% 수준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대상 174개 항목 중 나머지는 실거래가의 70∼80%만 지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