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 가격과 유통의 비밀
농축산물 가격 양극화 심화 농가 경제 심각
농민 불안 심리 잠재우는 정부 시그널 중요
수급조절 실패 정부 농민간 신뢰 회복 필요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2023. 1. 9
2022년은 유독 농축산물 가격이 말썽이었다.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한 쌀값은 쌀 농민들이 아스팔트 농사를 짓게 만들었고, 한우 가격 또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지 가축시장에서는 송아지 한 마리에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아 사육을 포기하는 농민이 속출한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출렁이는 곡물가격은 사육비를 끌어올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고, 한우 한 마리를 사육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사룟값을 감당해 내야 하는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계란도 마찬가지다. 최근 계란 가격이 급격히 올라 정부가 비싼 가격에 계란을 수입하겠다고 나서자 농민단체가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채소 수급도 널뛰기를 반복했다. 배추 가격은 지난해 여름 급격하게 뛰어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전을 펼쳤고 품목마다 상황은 달랐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격리와 방출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농업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흔한 일이 됐다. 2023년에도 농축산물 가격은 큰 화두가 될 듯하다. 산지 가격은 농민들의 주머니 사정과 직결돼 있다 보니 전 농민들의 관심사여서다. 농축유통신문이 신년을 맞아 널뛰는 농축산물 가격, 유통 문제를 훑어본다. <편집자 주>
# 농축산물 가격은 왜 급등락을 반복할까
농축산물 가격은 급등락을 반복한다. 해마다 지치지도 않는 언론의 단골 메뉴다. ''비싸다 싸다''가 언론을 장식하면서 국내 농축산물 가격은 극심한 양극화를 경험하는 듯하다. 가뭄에 콩 나듯 수급이 안정됐다는 보도가 나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급락과 폭등의 키워드가 포털 메인을 차지하곤 한다.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이유는 농축산물은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공산품처럼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없고, 창고에 차곡차곡 마냥 쌓아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포장과 저장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저장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곡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몇 개월 이내로 소비돼야 한다.
가령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가 배추 산지 격리를 감행해 창고에 저장해도 감모율은 20%나 된다. 2개월만 지나도 썩어 문드러지는 배추가 속출할 지경이다. 때문에 저장과 방출 시기의 시차가 크지 않아 격리 효과도 제대로 누리기 힘들다.
농축산물 생산 시 소요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계절에 따라 파종시기가 있고 때를 놓치면 생산하지 못하는 위험부담도 있다. 농축산물은 기후와 지역이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어 소비지의 요구에 따라 작목을 마냥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축산이 자유롭다고는 하나 한우의 경우 2년 가까운 사이클을 보유해 시장 상황에 맞게 생산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두 번째 이유는 농축산물이 필수재 성격을 띠고 있어서다. 농축산물은 국민들의 먹거리다. 수급이 부족하다 해서 먹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보니 양은 줄이더라도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것들이다. 가령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크게 오르더라도 비싼 가격에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농축산물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배추 가격이 폭등해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라는 구호를 냈다가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싼 가격으로 인한 착시 효과다. 농축산물 가격이 많이 비싸졌다곤 하나 단위당 가격은 1만 원 이하가 대다수다. 특히 채소의 경우 단위 당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조금만 가격이 출렁여도 비중으로 따지면 몸집이 커 출렁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1,000원 상추 가격이 300원 올라다 쳐도 30%가 오른 셈이니 이는 언론에서 폭등과 폭락을 키워드로 쓸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 가격은 심리 선제적 수급조절의 중요성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축산물은 가격은 출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변화무쌍한 날씨가 가격의 등락폭을 더 키운다. 특히 가격은 사람의 심리와도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어 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중간 유통 업체들은 최대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물량을 풀지 않으면서 가격 상승을 가파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한꺼번에 물량이 쏟아지면서 가격 하락에 부채질을 한다.
더욱이 농민들의 불안심리는 가격이 떨어질 때 극에 달한다. 1년 농사로 한 해 먹거리를 장만하다 보니 가격 하락에 대한 공포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 높다. 산지에서 생산비라도 건지기 위해 도매시장에 헐값에 농산물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년 경험하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가격 변화는 농업의 펀더멘털을 약화시키는 주 요인으로 자리한다.
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농축산물은 농민들의 투기적 성향을 부추긴다. 더욱이 농촌의 복잡한 채무관계가 불안심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농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축산업에서 사료비 대금 지불 구조가 대부분 빚으로 얽혀 있어,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 같은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수급조절 정책이다. 현재는 각 품목단체 스스로 수급조절에 나서지만 한정된 예산과 부정확한 예측 때문은 때로는 수급 불안을 키우는 트리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시장에 주는 정부의 수급 시그널은 불안을 잠재우고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연착륙하는 훌륭한 처방전 역할을 한다. 일시적이더라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이뤄진다면 농민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수급조절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부정확한 통계 시스템 때문이다. 쌀의 경우 매년 현실에 맞지 않는 통계자료를 내놔 여론의 뭇매를 맞곤 했다. 잘못된 통계를 기반으로 한 수급조절 정책은 시장 가격을 왜곡해 등락폭을 키우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또 하나는 정부의 가격 하락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다. 가격이 떨어지는 시기 가격을 방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현재 한우 가격 폭락 사태도 과거 미경산우 비육 지원 사업에 정부가 탐탁지 않아 하면서 시기를 놓친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선제적 수급조절이 농축산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사후 약방문식 대처''로 늘 가격 하락의 피해는 농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농가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 시스템을 확보하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정책을 처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정부와 농민 간 신뢰 회복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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