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입 추진 CPTPP 등 검역절차 시간 제한 의무화
사과·배 등 유입 급증 우려 수입금지 범위 지역화 걱정
병해충 미발생지 수입 가능 정부의 검역역량 강화 필요
농민신문 김해대 기자 2023. 1. 9
메가(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가 완화돼 외국산 신선농축산물 유입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또다시 제기됐다.
현재 우리 정부는 검역 절차를 이유로 사과·배를 비롯한 주요 신선농축산물 수입을 막고 있는데, 메가 FTA 체제에선 이 조치가 과학적으로 정당한지 제한된 시간에 따지도록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현재 우리 정부가 가입을 추진하는 메가 FTA의 핵심 의제가 ‘SPS 완화’여서 올 한해 농업계의 걱정이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SPS는 동식물 보호나 식품 안전을 위해 농축산물 생산·무역에 가하는 조치다. 수입 농축산물 위험성 평가가 대표적으로, ‘비관세 무역장벽’의 하나로 평가된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SPS 관련 통상규범의 강화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SPS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기존 FTA 체제에선 선언적으로만 운용됐다.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WTO SPS 협정문’이 채택돼 수입위험평가 등의 국제 기준이 적용됐지만 개별 국가의 방역 권리도 동시에 인정돼 국제 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검역이 가능했다.
메가 FTA에선 상황이 다르다. 당장 2022년 출범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과 현재 가입을 논의하고 있는 CPTPP는 SPS 관련 국제 기준을 협정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우리는 RCEP·CPTPP 모두 후발 가입국이어서 이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예로 RCEP 협정문 5.7조는 ‘수입농산물 위험성 분석 진척 상황과 지연 이유를 수출국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존 ‘위험성 평가’를 ‘위험성 분석’으로 한단계 높이고, 수출국·수입국의 의사소통도 강화했다. CPTPP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위험성 분석 결과 무역을 재개해야 한다고 판정되면 수입국이 합리적 기간 내에 조치’하도록 대응 기간도 명시했다.
타격이 우려되는 건 국내산 ‘신선’ 농축산물이다. 현재 사과·배 수입을 요청한 국가는 13개국으로 수입위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사과만 해도 미국·일본·중국·이탈리아·뉴질랜드 등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2∼2022년에 축산물과 관련한 수입 요청 역시 89건이며, 이 가운데 85건이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통과된 4건의 소요 기간은 6∼9년이어서, 위험성 평가가 사실상 농축산물 수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김성남 농협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수입위험평가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점은 수출국이 제기하는 주요 불만 사항 가운데 하나”라며 “메가 FTA가 체결되면 수입위험평가 요청이 늘고, 이는 우리 검역 당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서도 ‘SPS 조치 완화’를 논의하고 있어 관련 규범이 어느 수준으로 결정될지도 관심사다.
‘지역화’도 걱정거리다. RCEP과 CPTPP는 병해충 발생에 따른 수입금지 범위를 ‘지역화’ ‘구역화’ ‘구획화’로 세분화한다. 미국 특정 주에서 생산하는 사과에 금지 병해충이 발생해도 미국산 사과 전체 수입은 못 막는단 의미다. 특히 구획화는 수입금지 범위를 병해충 발생 ‘시설’로 크게 줄였다.
또 수입국이 지역화 인정 요청을 받으면 RCEP은 ‘과도한 지체 없이 관련 절차를 설명’하도록 하고, CPTPP는 ‘신속하게’ 설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위험분석 절차 등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수입·수출국이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간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앞서 ‘협력적 기술적 협의’ 절차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기술적 협의 절차는 180일 이내 합의를 기본으로 하고, 불발되면 약 30일 내에 1회 회합 기회를 부여한다. 합의점을 못 찾으면 분쟁 절차로 넘겨 결론을 낸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 교수는 “주어진 기한 내에 SPS 조치 관련 현안을 해결하도록 법적 구속력이 부여돼 지금처럼 신선 사과·배·축산물 수입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SPS는 과학적 증거주의에 근거하므로 짧은 시간에 양자 협의를 통한 해결이 어렵고, 결국 분쟁 해결 절차로 회부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SPS가 통상의 급한 불로 떠오른 만큼 정부가 검역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지난해말 기준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원은 1200여명으로 미국 동식물검역소의 15%, 일본 식물방역소의 22%에 불과하다.
문한필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부교수는 “SPS 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통상 전문가는 단기간에 육성하기 쉽지 않아 장기적인 관점으로 선진국 수준의 검역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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