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빈곤해지는 농가살림
비료·농약·사료 등 가격 천정부지
농자재 가격 상승은 농가 생산비 부담 가중요인
국제 원자재 가격 강세 이어질 경우
농산물 가격 인상요인 미미해 농업소득 감소 전망
원자재 안정적 공급대책과 정책지원
수요관리방안 마련 등 필요
농수축산신문 이한태 기자 2023. 1. 3
2020년 1월 1097원하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빠르게 치솟았다. 결국 지난해 9월 말에는 1445원을 기록하며 1500원대까지 돌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다행히 지난 12월을 지나며 29일 1267원대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산업계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이는 농업과 축산에 필수적인 농자재와 사료 등의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과 맞물려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가중시켰다. 특히 농업분야는 일반 제조업과 달리 생산비 증가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축산물 등의 가격을 올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고스란히 생산자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환율 시대, 농업소득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살펴봤다.
# 원달러 환율 변동성 커져
한국은행을 비롯한 경제연구 기관들은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 변화,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에 따른 글로벌 투자심리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급등락 하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KIF)은 지난해 11월 경제동향 세미나를 통해 미 연준의 통화긴축으로 2021년 평균 1145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1305원, 올해 1360원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통화 긴축, 지정학적 불안, 금리 인상에 따른 자산시장 위축 등으로 위축된 경기는 1년 이내에 확장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본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말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고물가에 대응해 통화긴축 기조를 강화하면서 주요국 환율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돼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이라며 우리나라는 이에 대응해 거시경제 안정을 위한 정책과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4분기 지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상승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기업의 영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 15개 지역본부(강남본부 제외)가 지난해 11월 327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환율 상승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원가 상승 효과가 매출 증대 효과보다 크게 나타났다. 특히 수입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업체의 경우 원가 상승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환율 수준과 관련해 설문이 진행된 당시 수준인 1400원대(지난해 10월과 11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각각 1427원과 1364원)가 지속될 경우 58.7%의 업체가 장기적 성장 또는 사업의 연속성에 부정적 영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의 수익성 측면에서 볼 때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은 1200원대(39.9%), 1100원대(32.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올해 환율에 대해 1300원대를 전망하는 업체 비중이 72%로 가장 높았으며 1200원대(15%), 1200원 미만(1%) 등 1300원보다 낮은 수준을 예상하는 업체는 적었다.
이처럼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서 제조업계는 지속적인 경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 비료·농약 등 가격 인상 압박 커져
이는 수입의존도가 높은 농자재업계나 축산 사료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으로 평균 가격이 두 배가량 오른 무기질 비료와 원제 등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작물보호제(농약) 업계도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가격 인상 압박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작물보호제 업계에 따르면 환율 인상분을 제외한 원자재 가격이 품목별로 적게는 5%, 많게는 20%까지 올라 평균적으로 10%이상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년도에 1150원선으로 예상했던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타격을 받았다. 특히 원자재 구입 시기와 대금 결제 시점이 다르다 보니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은 업계에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조성필 한국작물보호협회 상무이사는 “일부 일본산을 제외하고는 원제 80% 이상이 달러로 거래되는데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지난해에 환율로만 20% 이상의 원가 인상요인이 발생했다”며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치솟아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조규용 한국비료협회 이사도 “환율이 10% 상승할 때마다 제조원가는 5% 이상 상승 압박을 받는다”며 “수입대금을 결제하는 시기에 환율이 급등할 경우 업계는 자금난에 시달려 다음 해 생산을 위한 원료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경영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사료가격 인하에도 효과는 ‘미지수’
지난해 말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사료가격도 몇 차례 인상을 반복하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해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가중시켰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연도별 배합사료 가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까지 평균 배합사료 가격은 kg당 641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2년부터 2021년 평균 497원 대비 144원, 29%, 전년 526원 대비 115원, 21.9%이나 높은 가격 수준이다.
이는 높은 국제곡물가격과 해상운임에 더해 환율이 치솟았던 영향이 컸는데 지나해 7월 들어 국제곡물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고 원달러 환율마저 하락하면서 가격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실제로 농협사료는 지난해 말 포대당 500원을 전격 인하해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이 일제히 환영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 올해 생산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사료가격 인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배합사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다소 안정되고 있고 해상운임, 국제곡물가격 하락 등 배합사료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부자재가격 상승과 지난해 배합사료업체들이 큰 환차손으로 입은 영업손실, 국제정세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불안정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올해 배합사료 가격이 무조건 내려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고스란히 농가 생산비 부담으로 전가
이같은 농자재 가격 상승과 높은 수준의 사료가격은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은 생산비 인상 요인 보다 수급 상황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가 실제 구입하는 비료, 농약 등 재료비는 지난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7.6%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비료 구입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134%나 급등했으며 농약도 7.9% 상승했다. 영농광열비 역시 크게 오르고 있다.
재료비가 농가경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 수준임을 감안할 경우 비료, 농약 등 재료비 인상으로 지난해 상반기에만 농가경영비 부담이 6~8% 늘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 비료와 농약만을 놓고 본다면 2% 내외의 경영비 부담이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 서대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농자재 가격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농약, 비료 등의 가격 인상 시나리오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율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부 변수를 통제한 상황에서 농약비, 비료비 등 농업경영비 상승 요인만을 감안할 경우 지난해 경종작물 소득은 전년 전망치 대비 20%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 농약비 등의 인상요인을 제외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올해 무기질 비료 가격이 지난해 대비 5~50% 상승할 경우 경종농가의 소득은 평균 1~1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채소 작물은 이같은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 2~21%의 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농협 등에서 비료비 인상분을 지원할 경우 경종작물 소득 감소율은 0.2~2.3% 수준이 될 전망이다.
또한 원자재와 원제 수출 보호주의 등으로 비료와 농약 가격이 동시에 오를 경우 올해 경종작물 소득은 지난해 전망 소득 보다 3~14%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료비와 농약비 상승에 따른 농업경영비 상승이 농산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영농형태별로 인상률이 최대 0.5% 내외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농업경영비가 늘더라도 농산물 가격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해 경영비 부담은 고스란히 농가가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 연구위원은 “지난해 원자재 가격과 국제 곡물 가격이 크게 상승한데다 해상운임과 환율 급등으로 국내 농산업 부담이 가중됐다”며 “국제 원자재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경우 농산물 가격 인상요인은 미미해 농업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 대책과 정책 지원, 수요 관리 방안 마련 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조승현 농협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도 “지난해 7월 국제식량가격이 안정되면서 4분기부터는 국제식량가격과 함께 사료가격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물가의 불안한 상태가 지속됐다”며 “이같은 가격 인상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경영비 압박이라 농가 입장에서는 영향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국내에서 옥수수, 대두 등을 일부 배합한다거나 단기적 금융지원 등 외에는 대응방안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경기 침체로 농가 경영 여건 악화까지 우려
이러한 고환율 기조는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성장 둔화를 부추겨 경기와 소비심리를 위축시킴으로써 농축산물 소비가 줄도록 만든다. 소비 수요 감소는 농산물 수요 기반을 약화시키고 생산마저 위축시켜 농가 경영 여건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커 정책적인 대응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 성장으로 하향 조정했다. 연초 3% 성장을 예상했으나 지난해 5월 2.7%로 낮춘데 이어 또 다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역시 1.7%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올해 대외여건 악화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1.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심리 역시 경기하강 흐름에 따라 부정적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6월 96.4로 낮아진 뒤 회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소매판매는 크게 위축돼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소매업 판매액은 전년 동월과 비교해 0.2% 감소했으며 3분기에도 0.1% 줄었다. 농림어업 성장률 역시 지난해 3분기에 전년 대비 1.4%나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게다가 이러한 영향은 농업부문에서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와 사전적인 대비가 강조된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도 농업부문은 환율이 정상 수준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성장률이 하락하고 농가가 도산하는 등 시차를 두고 영향이 지속돼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만 했다. 실제 농가 생산액 성장률, 농가부채 규모 등의 자료를 보면 농가의 경영 여건이 IMF 당시인 1998년 보다 2000년에 더욱 악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의식 농경연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온라인으로 열린 ‘농업·농촌의 길 2022’에서 ‘고환율, 경제위기와 농업부문 쟁점 및 과제’ 주제발표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황 명예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두 번의 경제위기 때 환율, 금리 상승 등으로 농업 생산비가 증가하는데 그만큼 농산물 가격이 받쳐주지 않으면서 농가의 경영위기가 발생했다”며 “농가의 경영위기는 시차를 두고 발생하기 때문에 농업 기반이 유지될 수 있도록 완충대책을 마련해 농가 경영위기를 방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사용량 저감 등 장기 대응 방안도 필요
이에 따라 주요 원자재 등의 가격동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농가 금융지원, 효과적인 농산물 수급관리 등이 강조되고 있다.
황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농가의 경영위기를 완충하기 위해 농업분야 직불제 규모를 확대하고 정책금융 지원에서는 변동금리 정책자금을 고정금리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한편 사료곡물 비축 규모를 확대하는 지원이나 일본과 같은 사료가격안정기금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며 “또한 농산물은 생산원가 상승을 농가판매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별 품목의 물가 관리보다는 농업 기반을 유지해 공급 부족을 방지하고 과잉 생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전생산조정과 비축제도 등 효율적인 수급관리 방안의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대석 연구위원도 “당분간 국제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환율 역시 불확실한 만큼 국제 비료 원자재와 곡물의 수급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며 “원자재의 수급 안정을 위한 정부의 ‘무기질 비료 원료구입자금 지원’ 사업과 국내 질소질 비료의 주요 원료인 요소에 대한 할당관세 제도를 지속하고 농약 원제 가격이 상승할 경우에 대비해 시행했던 농약 원제와 완제품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 연구위원은 농가에서 비료와 농약의 적정 사용 등 효율적인 수요 관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서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원료구입자금 지원이나 환율차손 지원 등 금융지원이 효과적이지만 예산 등의 제약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단위 면적당 농약, 비료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제품 개발과 고품질화 등 장기적으로 사용량을 줄여 환경에 부담까지 경감시킬 수 있는 방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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