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이후에도 경매는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지만 불편하고 힘든 게 한둘이 아니에요. 장소가 좁아 농산물 운반도 힘들고, 상인들의 판매도 부진하고, 시세까지 좋지 않아 다들 표정이 어두워요.”
7일 오후 찾은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 A동은 채소 경매를 준비하느라 상인들과 하역인부들이 분주했다. 10월25일 화재로 농산 A동 중 ‘아래 아치형 점포’로 불리는 A-1동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다행히 A-1동과 붙어 있는 A-2동은 일상의 모습을 회복한 듯했다. 대구시가 사고 직후 화마를 피했던 A-2동을 사용하기 위해 긴급안전진단을 실시해 안전성을 확보한 후 화재 이튿날부터 거래 재개에 들어간 덕분이다. 하지만 시장종사자들은 불편함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박순민 농협북대구공판장 차장은 “화재로 경매 공간이 줄어들어 과일 경매가 이뤄지는 아침에는 명절 성수기보다 시장이 혼잡스럽다”며 “다행히 출하주의 분산 출하가 이뤄져 경매 물량이 30%가량 줄었는데도 경매 전후에는 차량과 사람이 한데 엉켜 말 그대로 난장판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박춘만 효성청과 영업총괄이사는 “농산 A동에 경매 공간이 부족해 농산 B동을 활용했었는데 A동에 터를 잡고 상인들이 경매 후 낙찰받은 물량을 일일이 옮기면서 시장이 마비되다시피 해 농산 B동 활용을 포기했다”면서 “임시 점포·경매장이 꾸려지면서 주차공간도 부족해 경매 때 시장 내 교통혼잡은 말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화재로 점포를 소실한 한 채소상인은 “안전진단상 문제는 없다지만 A-2동이 불탄 A-1동과 연결돼 있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계속 든다”며 “당장 먹고살아야 해서 불타버린 점포에는 발도 디뎌보지 못하고 이곳을 드나들며 장사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화재 이후 거래처 납품도 제대로 맞추기 힘들어 판매도 부진하고 천막으로 만든 임시 점포에서는 낙찰받은 농산물을 제대로 저장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탄식했다.
화재 이후 시는 27일부터 농산 A동과 상가건물 사이 주차장 부지에 몽골텐트 77개를 설치하며 서둘러 상인들에게 임시 점포를 지원했다. 하지만 몽골텐트로는 동절기 대비가 전혀 안돼 상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임시 점포 설치로 주차공간이 줄어드는 바람에 시장을 드나드는 차량의 시장 내 운행이 더욱 번잡스러워지는 불편도 야기했다.
이와 관련해 시는 빠른 시일 내에 몽골텐트를 가설 건축물로 대체해 상인들의 영업을 지원하고 임시 경매장도 추가 설치해 경매 혼선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박수근 대구시농수산물도매시장관리사무소 시설팀장은 “급한 대로 주차장에 임시 점포를 설치했지만 동절기가 다가옴에 따라 12월 중에 몽골텐트 대신 가설건축물을 설치할 계획”이라며 “현재 임시 점포가 설치된 주차장 빈 공간에 마련한 임시 경매장도 시설을 보완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경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시장 상황에서 다른 도매시장으로 분산 출하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농민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고 있다. 상인들의 판매 부진으로 시세가 하락한 것이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경북 성주에서 매천시장으로 12년째 상추를 출하하고 있는 송장근 가야산상추작목회장(54)은 “화재 여파로 상인들의 판매가 부진하고 최근 이태원 참사로 국가 애도기간까지 이어지면서 상추 가격이 맥을 못 추고 있다”며 “상추값이 부진한 상황에서 어렵게 운송 차량을 수배해 비싼 운임을 부담하면서까지 다른 시장으로 출하할 여력도 없다”고 한숨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농민에게도 화재 피해 여파가 미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시가 나서서 하루빨리 시장을 정상화시켜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