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경북 안동에 있는 저온창고에서 최용칠 경북약용작물생산자협회장(왼쪽)이 창고 관리자와 함께 30t가량 쌓인 천궁 재고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확인하고 있다.
천궁·당귀·작약 등 소비줄어
풍년 겹쳐…재고마저 넘쳐나
국산 가격 폭락땐 산업 붕괴
“농가보호 위해 특단 대책을”
농민신문 안동=김성국 기자 2022. 11. 14
천궁·당귀·작약 등 국내 약용작물의 소비가 줄고 있는 데다 최근 몇년간 풍년으로 재고마저 넘쳐나 농가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해당 품목의 수입 중단 등 농가 보호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천궁·당귀·작약 3개 품목만이라도 의약품 한약재 무(無)수입을 통해 국산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는 게 생산자단체들의 입장이다.
단년생 작물인 천궁은 2019∼2020년 풍년으로 재고량이 쌓인 상황에서 지난해와 올해 역시 적지 않은 양이 생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가들은 현재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천궁을 판매하고 있다.
강원도 일대에서 천궁을 재배하는 최용칠 경북약용작물생산자협회장(60)은 “한근(600g)당 생산원가가 1만원 정도인데 현재 재고량이 넘쳐나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6000∼7000원에 거래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 회장은 이어 “제가 알고 있는 천궁을 취급하는 영농법인이나 단체 등 10곳의 창고에 50t씩, 최소 500∼600t은 재고량으로 쌓여 있다”고 덧붙였다.
천궁 재고량만 해도 지난해 한약재 수급조절위원회의 2022년 수요 예측량인 624.1t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귀도 같은 상황으로 파악된다. 전영섭 강원 평창 진부농협 계장은 “당귀를 취급하는 제약회사나 업체들이 경기가 어려워 전보다 구매를 줄이면서 농협에서도 재고를 많이 안고 있다”고 전했다.
평창에서 당귀를 재배하는 함승주씨(67)는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아 양은 조금 줄었지만 지난해에 워낙 많은 양이 생산돼 농협과 영농법인, 개인 저장창고에는 재고량이 넘쳐난다”면서 “의약품용 당귀가 수입되면 국산 재고량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사를 지속할 수도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작약은 폭락한 값과 불어난 재고 때문에 수확시기를 늦추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경북 영천에서 작약을 재배하는 전주택씨(67)는 “작약은 재배 4년차에 수확하지만 값이 폭락했고 더이상 재고를 쌓아둘 수도 없어 올해 수확을 못하고 내년까지 땅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약재 수급조절위원회 생산량 조사소위원회는 지난해에도 공급 예정량이 수요 예측량보다 높게 나온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급조절위에 당귀·작약에 대한 무수입을 본회의에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조사 결과 당귀 공급 예정량은 582t으로 수요 예측량인 572t보다 많았고, 작약 역시 공급 예정량이 1100t으로 수요 예측량보다 133t 많았다. 당귀·작약 모두 국내산만으로도 충분해 올해 수입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에 약용작물 생산자들은 천궁·당귀·작약 3개 품목만이라도 내년 의약품용 한약재 수입량을 결정하는 한약재 수급조절위원회에서 수입량을 배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가에서 재배한 약용작물 판로도 없는 상황에서 의약품용 한약재까지 수입하면 국산 한약재가 외면받아 농가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생산량 소위원회를 주관하는 김광신 한국생약협회 회장은 “이번만큼은 예외적으로 3개 품목에 한해서 무수입으로 배정량을 결정해 농민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산 약용작물 가격 폭락을 막지 못하면 국내 농가 생산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멸종될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현재 제약회사들도 소재 국산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농가 보호를 위해 무수입을 결정한다면 한약재 전반에 대한 국민들 신뢰를 제고하고 농가도 사는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산량 소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최수빈 농림축산식품부 원예산업과 사무관도 “제도 취지에 맞게 국내 약용작물 생산농가도 보호하고 약용작물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한의약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한약재 수급조절위원회는 국산 한약재값과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11개 품목(구기자·당귀·맥문동·산수유·오미자·일당귀·작약·지황·천궁·천마·황기)에 대해 의약품용 한약재 수입량을 조절하는 기구로, 다음달초에 내년도 수입량을 결정하는 본회의가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