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협김치조합공동사업법인 경기 연천지사는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 김치의 90%를 경기지역 학교급식에 납품한다. 한국농협김치는 올 4월 지역농협 김치가공공장 8곳이 통합해 출범한 법인이다. 모든 재료를 국산으로 쓰는 농협김치 특성상 가격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군급식 판로까지 막혀 학교급식에 집중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재료 국산화율과 청결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덕에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두달 뒤부터는 중소기업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학교급식 납품이 끊길 상황이다.
지역농협의 중소기업 지위 인정 특례가 올해말로 만료되지만 관련법 개정이 지지부진하며 농협김치의 공공급식 납품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현재 지역농협은 ‘농협법’과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판로지원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중소기업 지위를 인정받아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인 지역농협을 중소기업으로 분류할 수 없어 특례조항을 한시적으로 만든 것이다. 특례는 올 12월29일로 만료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특례를 영구화하는 법안과 5년 연장하는 농협법 개정안 2건이 발의돼 있다. 법 개정을 위해선 판로지원법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동의가 필요한데, 중기부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전국 지역농협 김치공장은 지난해 학교급식에 275억원 규모의 김치를 공급했다. 전체 생산액의 21.7%에 달한다.
일선 현장에선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학교급식 물량이 빠지면 지역농협 김치공장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 서안동농협은 매출액의 20%를 학교급식에서 올리고 있다. 관련 매출이 42억원, 투입되는 원재료만 21억원에 달한다.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도 경기지역 매출액 중 36.5%가 학교급식에 집중돼 있다. 이 물량이 빠지면 공장 가동 자체가 어렵게 된다. 김치가공공장과 운영대리점 직원만 320여명이다.
2016∼2021년 지역농협 김치가공공장 12곳의 농산물 원물 매입액은 연평균 535억원, 학교급식 관련 지역농협 조합원 소득도 111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지역농협 김치가공공장 한곳의 연매출은 평균 105억원으로 중소기업기본법이 규정하는 중소기업 매출 기준액(1000억원)을 밑돈다는 게 농협의 설명이다. 이만수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 대표는 “농협김치는 재료 모두를 국산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업체와 가격경쟁이 쉽지 않은데, 중소기업 지위까지 인정받지 못하면 사실상 농협의 국산김치 생산기반 자체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런데 중기부는 특례 연장에 유보적인 태도다.
중기부 관계자는 “그동안 중소기업계 입장을 대변해 특례 연장에 원칙적으로 반대했지만, 이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역농협의 중소기업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와 재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농업계에선 농협김치와 농가의 농산물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를 막으려면 중기부가 조속히 입장을 정하고 국회 차원에서 관련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영배 전북 진안 부귀농협 조합장은 “지역농협 김치공장은 매출이나 생산규모에 비춰볼 때 중소기업 기준에 부합한다”며 “이번을 계기로 지역농협의 중소기업 지위를 영구적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위 연장을 국내 밭농업 육성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농협이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 지위를 상실하면 배추·무·마늘·대파·양파 등 김장채소류 판로 축소로 이어져 밭작물 전반 생산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며 “농산물 시장개방 가속화로 농업 지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내 밭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농협의 중소기업 인정 특례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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