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해 벼 대신 타작물을 심는 농가에 보조금을 다시 주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액수가 너무 적어 아쉽습니다. 이를 대폭 상향해야 농가 참여가 늘어 정부가 의도하는 사업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9월26∼27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 비체팰리스호텔. 보령 남포농협(조합장 김석규)이 개최한 ‘2022년 논 타작물(콩) 및 이모작 밀 재배 워크숍’에 많은 조합원이 모였다. 남포농협은 워크숍에서 2023년 시행 예정인 ‘전략작물직불제’의 취지와 직불금 단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조합원들은 이에 큰 관심을 보이며 내년도 작부체계를 구상했다.
다만 내년 직불제에서 제시하는 직불금 단가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직불제는 논에 콩·밀·조사료·가루쌀(분질미) 등을 심으면 1㏊당 50만∼2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콩·가루쌀(하계)만 심는 경우 100만원을 받지만, 밀·조사료(동계)와 콩·가루쌀(하계)을 이모작하면 250만원을 받는다. 동계에 밀을 심고 하계에 일반 쌀을 재배하면 50만원이다.
이 직불제의 목적은 논 활용도 제고, 벼 재배면적 감축, 밀·콩 자급률 상향 등 3가지다. 2018∼2020년 시행됐던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쌀 생산조정제)과 명칭만 다를 뿐 내용과 목적은 거의 유사하다.
워크숍에 참석한 논콩농가 백경기씨(69·남포면 월전리)는 “2018∼2020년 당시 200만∼300만원씩 보조금을 받았어도 단수가 3.3㎡(1평)당 1㎏ 이상 나오지 않으면 벼에 비해 소득이 떨어졌다”며 “지역 논콩농가들 평균 단수가 600∼800g이기 때문에 100만원 정도의 보조금으로는 농가를 논콩 재배로 유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백씨 말대로 쌀 생산조정제 시행 2년차였던 2019년 논콩 보조금은 325만원이나 됐지만 그해 논 타작물 재배면적은 2만8610㏊로 목표면적(5만5000㏊)의 52%에 그쳤다.
김찬기씨(71·남포면 창동리)는 “올해 영농자재비·인건비 등 생산비가 급증했고 내년 이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보조금 단가를 결정할 때 감안해야 한다”며 “논콩·가루쌀만 하계에 재배할 경우 1㏊당 최소 200만원, 밀과 콩을 이모작할 경우 500만원은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올해산 쌀 90만t을 공공비축·시장격리 하기로 함에 따라 최근 쌀값이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50만∼250만원의 보조금으로는 벼농가를 타작물재배로 유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략작물직불금 단가에 대한 불만은 사실 밀농가들이 가장 크게 가지고 있다. 전략작물직불제에 따르면 밀농가들의 가장 일반적인 작부체계인 밀(동계)+일반 쌀(하계)에 대해 50만원의 직불금이 책정돼 있는데 이는 기존 선택형 공익직불금인 논활용직불금을 통해 이미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밀농가들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받고 있는 직불금을 액수는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꿔서 준다는 것인데 이는 밀농가를 우습게 보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밀생산자회(회장 최성호)는 최근 성명을 통해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국산 밀을 전략작물로 육성하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밀 전략작물직불금을 1㏊당 50만원으로 책정한 것은 국산 밀 생산확대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생산비를 감안했을 때 직불금 액수는 최소 250만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이 농촌진흥청의 ‘농산물소득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밀농가들은 50만원의 직불금을 받았어도 1㏊당 23만4000원(2020년 기준)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2022년 생산비가 25% 인상됐다고 가정하고 우리밀이 수입 밀과 동등한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약 31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은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영세농가가 많은 현실에서는 일본처럼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식량자급률을 그나마 높일 수 있다”며 “전략작물직불금을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밀농가들이 일반 쌀이 아닌 가루쌀을 하계에 재배하면 250만원의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무엇보다 가루쌀을 심고 싶어도 종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내년도 가루쌀 재배를 위해 준비한 종자는 2000㏊ 분량뿐이다. 하지만 8∼9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농업법인 등으로부터 가루쌀 종자 신청을 받은 결과 3300㏊ 분량이 신청됐다. 당장 내년에는 가루쌀을 재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면적이 1300㏊에 이르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가루쌀이 정부 의도대로 산업화에 성공해 안정적인 재배환경이 조성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경아 우리밀생산자회 사무국장은 “밀농가가 일반 쌀 대신 가루쌀로 돌아서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밀을 육성한다고 오랜 기간 동안 노력했지만 자급률 0.8%(2020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쥐고 있는 실정에서 이제는 가루쌀을 육성해보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가루쌀 재배에 뛰어들 농가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송 운영위원은 “가루쌀이 과연 안정적으로 소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크다”며 “과거 우리밀 과잉생산으로 홍역을 치렀던 일이 가루쌀에서 재연될 수 있고, 그럴 때 가루쌀 재배로 돌아섰던 농민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