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수입하는 미국산 TRQ(저율할당관세) 쌀이 특정 지역과 품종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작황부진에 따라 현지 쌀값이 오를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TRQ 예산에 반영돼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및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따라 매년 40만9000톤의 쌀을 TRQ 물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수입양곡 매입예산은 추경을 포함해 2019년 약 3800억원, 2020년 4324억원, 2021년 4400억원, 2022년 4327억원이다. 내년에는 약 5549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내년 예산은 올해에 비해 약 28%나 증액된 것. 이는 국제 곡물가격과 환율 상승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특정 국가의 쌀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미국이다. 국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중립종 1등급 기준 현지 쌀 가격은 톤당 약 1500달러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지역의 작년 쌀 평균 가격은 톤당 1023달러고, 2020년엔 878달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쌀 가격이 오른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가뭄이 극심해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공용으로 수입하는 미국산 TRQ 쌀이 바로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중립종 쌀이다.
이렇게 수입된 쌀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국영무역 방식으로 전량 수입해 판매한다. 그러나 신정훈 더불어민주당(전남 나주·화순)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수입된 미국산 쌀은 물량이 전무하다. 실제로 aT가 지난 2월, 5월, 8월 실시한 TRQ 쌀 구매 입찰 결과 미국산 쌀은 모두 유찰됐다. 이에 대해 aT 관계자는 “미국(캘리포니아)의 가뭄이 심해서 응찰 참여율이 낮았다”고 말했다. 가뭄을 원인으로 얘기했지만 입찰가격이 너무 높아 유찰된 것으로 분석된다. 세 차례 유찰된 물량 중 일부는 현재 aT가 추가 입찰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국내 업계에서는 “굳이 가격이 높은 특정 지역과 품종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업계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과 달리 텍사스 지역은 작황이 좋아 현지 쌀 가격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종은 장립종이다. 가격은 현지 가격으로 톤당 700~800달러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내 수입선과 품종을 다변화할 경우 TRQ 수입에 들어가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업계의 A 관계자는 “가격이 낮은 품종과 수입이 가능한 지역이 있음에도 높은 가격에 특정 품종을 수입해 예산이 낭비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TRQ 물량은 밥쌀용과 가공용을 포함해 연간 13만톤 수준이다. 밥쌀용 4만톤을 제외하면 9만톤 정도가 가공용으로 수입되고 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가공용 수요가 많은 것이 중립종이다. 장립종은 수요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산 수입 품종은 국내 수요가 고려된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장립종과 중립종 사용에 대해 국내 가공업계의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업계의 B 관계자는 “장립종이나 중립종 사용은 기술적인 문제다”고 설명했다. C 가공업체 관계자도 “(우리는) 가공기술의 노하우를 발휘하면 충분히 커버(활용)가 가능하다. 제품에 따라 어느 품종을 쓰느냐 차이는 있겠지만 큰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D 가공업체 관계자는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장립종을 수입해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품종 변경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조건을 새로 맞춰야 할 것”이라며 “과거 장립종 품종이지만 수입 국가가 바뀌면서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또한 현장의 인력들은 생산방식을 바꾸는 것에 번거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농식품부 관계자는 텍사스 지역의 장립종에서 과거 비소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어 장립종 수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국내 수요가 있다고 해도 안전성이 해소되지 않은 쌀을 수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관계자는 “장립종은 과거 비소 검출로 안전성 문제가 있어 수입이 중단된 적도 있다”며 “내부적으로 안전성 문제도 점검해 봐야하고 국내 수요도 있는지 다 봐야 할 것 같다. 순식간에 전환할 수는 없다. 모든 부분을 시험해 보고 (지역이나 품종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미국의 작황이나 품종 변경 등과 관련한 조사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년 aT의 양곡류 해외 시장조사 비용 예산은 4억원이 책정돼 있다. 이 예산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어차피 수입해야 할 쌀을 저렴하게 수입한다면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E 관계자는 “비소 문제는 지금은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시장조사를 해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A 관계자는 “국내 쌀 가격은 떨어지는데 수입쌀을 비싼 가격에 수입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국내 수요조사도 마찬가지지만 해외의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면서 (여러 품종을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면 예산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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