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노동환경 개선 촉구…농가, 을질로 한숨
공공기숙사 설립·공공형 계절근로자 확대 목소리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2. 9. 30
내국인 근로자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포용하고 이들과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게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길이다. 외국인 근로자는 농촌의 열악한 주거·노동 환경에 신음하고 농가는 외국인 근로자의 ‘을질’에 분통을 터뜨리는 가운데 아직 상생은 멀게만 느껴진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비례대표)과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이주노동119는 27일 국회에서 농업 이주노동자의 주거·노동 환경 개선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주노동119는 농업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상담 사례도 공개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사회연대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이주노동119는 지난 1년간 농업 이주노동자 300여명(182건)을 상담하고 임금체불, 노동자 동의 없는 임금공제, 성폭력 등의 피해 사례를 발견했다.
직접 기자회견장에 선 성폭력 피해 농촌 여성 이주노동자인 메이메이씨(가명)는 “컨테이너 숙소 뒤쪽에 있는 샌드위치 패널로 덧붙인 욕실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올 7월 고용주가 제가 목욕하는 걸 훔쳐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울먹였다. 또 그는 “계약서 내용과 달리 매일 30분∼2시간 추가 노동을 했지만 월급에 이 시간은 계산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윤 의원은 “노동자 동의 없는 임금공제, 휴게시간 조작, 성폭력 등의 문제가 농촌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면서 “농촌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개선된 이주노동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목소리 반대편에선 농가 절규도 들린다. 무단이탈과 사업장 변경을 위한 태업 등 외국인 근로자의 ‘을질’에 영농 피해가 크다는 하소연이다. 강원 양구의 한 토마토농가는 “지난해 2명이 도망갔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신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숨지었다. 농촌 주거·노동 환경 개선은 공감하지만 농지 바깥에 기숙사를 의무적으로 마련토록 하는 대안은 농가 대부분이 영세하고 대지 확보 등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안은 없을까. 기자회견에선 ▲숙식비 징수지침 폐지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임시 가건물 기숙사 금지 등과 함께 공공에 의한 기숙사 설립을 확대하자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0곳을 대상으로 시작한 외국인 기숙사 설립 지원사업은 당초 시범 운영 후 확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어서 내년도 예산안엔 신규 예산이 한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더욱이 올해 사업 대상지역 모두 착공이 되지 않아 사업 확대는 요원한 상태다.
계절근로자의 경우 공공형 확대가 거론된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기업과 달리 농가는 관리자 역할까지 하기 어려운 만큼 신뢰할 만한 기관이 농가와 외국인 근로자를 중개하는 공공형이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절근로자를 법무부 조기적응교육 대상에 포함해 이질적 문화·생활·관습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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