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기쁨은커녕 당장 내년 농사지을 걱정으로 고민이 큽니다. 더 이상 배추 농사는 힘들 것 같습니다.”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에서 고랭지배추 6만평을 농사짓고 있는 노성상(67) 씨는 수확시기가 임박한 배추를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각종 병충해 창궐로 배추가 버텨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백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고랭지 배추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은 한때 800㏊에 달했다. 매년 7월 중순부터 출하되는 태백 고랭지 배추는 추석 전인 9월 중순까지 국민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이중 매봉산은 국내 고랭지배추 생산단지 중 가장 높은 지대(최고 1,300m)로, 면적 규모로는 40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생산단지다.
매봉산에서 20년 넘게 배추 농사를 지었다는 노 씨는 배추 농사가 힘들었던 적은 올해가 처음이란다. 6만평 중 4만평은 이미 수확이 힘들 정도로 쑥대밭이 된 상태이고 그나마 남은 2만평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노 씨는 이상태로라면 배추 농사는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농사 여건이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노 씨에 따르면 운반비는 작년 60만원에서 75만원으로 올랐고 인건비도 30% 이상, 장비·비료·농약대 등도 거침없이 인상됐다. 평당 생산비가 9,000원에 육박하는데 수확할 배추가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 따로 없다.
노 씨는 “현장 농업인들은‘못살겠다’곡소리만 요란한데 정부는 물가타령만 고집하고 있으니 소외감만 절박하게 느낀다” 면서 “배추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만 나는 현실은 어디에다 하소연 할 곳도 없으니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다” 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태백농협이 파악한 작황조사에서 배추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연작장해에 따른 고질적인 병충해 탓도 컸지만 이상기온에 치료약제도 마땅치 않는 바이러스병이 휩쓸고 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때문인지 태백은 고랭지배추의 주산지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태백농협 농산물유통가공사업소 전상민 유통팀장은 “태백의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2020년 880ha에서 2021년 700ha로 줄었고 올해도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 말했다.
태백농협 신동수 마케팅팀장은 “배추 작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다보니 출하작업을 10일정도 앞당겨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생산비를 건지기에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면서“지난해에는 300평당 5톤 트럭 1대를 수확했는데 올해는 600~700평을 수확해야 겨우 한 대가 수확된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운반비, 인건비 등 생산비는 크게 올랐는데 출하물량이 없으니 농가들은 좌불안석이 따로 없다” 면서 “농사 못 짓겠다는 곡소리만 요란한 현실에서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신품종 개발과 맞춤형 약제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나온다.
가락시장에서 국내 최대 무·배추를 취급하는 대아청과 오현석 영업1팀 팀장은 “현재 고랭지배추 품종은 10여종에 이르지만 기후변화에 버틸 수 있는 품종은 전무한 상황으로, 신품종, 약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라며“현실적인 대안이 조속히 마련되지 못한다면 농가들의 품목전환 등 이탈현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