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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5일 고랭지 배추 생산단지인 강원도 태백 매봉산 포전에서 수확하지 못하고 버려진 배추들. 이 일대는 작황 부진으로 올해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무너진 주산지’ 태백·강릉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022. 8. 30
강원도 고랭지배추 주산지의 출하 작업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평년보다 2주 이상 빨라진 모습인데, 이른 추석 대목 수요와 지난해보다 높은 시세 영향이다. 하지만 수확의 기쁨이 가득할 것으로 기대했던 산지 분위기는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8월 25~26일 둘러본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태백과 강릉 일대 상황은 산지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재배면적 감소·이상기후·연작장해 등 악재가 겹쳐 생산량이 줄었지만, 운임비·인건비 등 생산비가 크게 치솟은 실정이어서 농가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았다.
생산량 줄고, 생산비 늘고…‘아, 어쩌란 말이냐’
태백 6월 기온 35도까지 올라
배추 망가져 물량 ‘3분의 1토막’
운임·인건비 등 생산비는 30%↑
“농사 지을수록 오히려 손해”
강릉 작황은 그나마 낫지만
불확실한 생산기반 걱정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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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작황은 역대 최악입니다. 정상 출하한 배추밭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에요. 고랭지 지역인 태백이 6월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간 날이 며칠 있었어요. 이례적인 일이죠. 그때부터 배추가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25일 태백 상사미동의 한 배추밭에 동행한 신동수 태백농협 농산물유통가공사업소 마케팅팀장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배추가 계속 망가지다보니 일반적인 출하시점(정식 이후 65~70일)보다 빨리, 60일 전에 작업을 하고 있죠. 가뜩이나 생산량이 줄었는데 조기 출하를 하니 생산량이 더 줄어들 수밖에요. 보통 300평당 5톤 화물트럭 1대 물량이 나오는데, 지금 600~700평당 1대가 나와요. 심각한 곳은 900평당 1대에요. 현재 배추 시세가 좋다는 것은 그만큼 망가진 물량이 많다는 얘기에요. 운임비·인건비 등 평당 생산비는 30% 늘었는데, 물량은 평년 3분의 1도 안 되니 큰일이죠.”
태백 지역의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20~30% 이상 감소했다는 얘기가 많다. 고랭지배추가 자라는 여름철 기후 여건상 감모율이 20% 정도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 작황은 이보다 더 나빠 감모율이 50% 이상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질적인 연작장해도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이상기후 피해가 컸다. 여기에 재배면적도 감소 추세가 가파르다. 태백농협에 따르면 태백의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2020년 880ha에서 2021년 700ha로 급감했고, 올해도 10% 이상 줄 것이란 예측되는 등 산지 상황은 악화일로다.
태백 매봉산에서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노성상(67) 씨의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매봉산은 국내 고랭지배추 생산단지 중 가장 높은 지대(최고 1300m)로, 면적 규모로는 40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생산단지다. 노성상 씨는 “고랭지는 평지대보다 생산비가 더 많이 든다. 운임비는 1대당 60만원에서 올해 75만원으로 늘었고, 인건비도 작년보다 30% 이상 올랐다. 토지·장비 임대료, 비료·농약대 등도 모두 올라 평당 생산비가 8500원 이상 들었다”며 “4만평에 들어간 생산비가 3억5000만원 정도 되는데, 생산량 감소 등으로 1억5000만원만 건졌다”고 토로했다.
노 씨는 “농사를 지어 오히려 손해가 생기고 있다. 날씨로 망가지는 물량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치솟는 생산비까지 농가가 다 감당하라는 것인가. 이러면서 ‘금배추’라고 하는데, 도대체 농사를 지으란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답답하다”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주산지인 강릉 대기리와 안반데기의 작황은 태백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생산 농가들의 걱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년에도 생산비는 또 오를 테고 이상기후 피해까지 겹치면 손해가 불가피한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생산 여건이 암담하다”는 고민이 역력했다. 추석 전 출하 작업이 한창인 시기, 농가들은 당장 내년과 내후년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생산 기반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예견된 참사’였지만, 대책은 없었다
농업전망 생산 감소 관측에도
정부 대책은 없어 ‘예견된 참사’
“할인쿠폰 몇백억씩 지원하며
생산자는 뒷전인가” 농가 한탄
고랭지배추는 연간 배추 전체 생산량(약 200만톤) 중 23만톤 내외를 차지한다. 비중은 작지만 가을 김장배추가 나오기 시작하는 10월 전까지 공급되는 배추 물량이라는 점에서 소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고랭지배추 생산 농가들은 안정적인 생산 기반 조성을 위한 중장기 수급방안 마련이나 영농 지원 확대 등을 원하고 있지만, 정부가 ‘물가안정’ 등 소비자를 위한 가격 관리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불만이다.
실제 올해 1월 발표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에서 고랭지배추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8.5%, 평년보다 9.3% 각각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그런데도 생산 지원책은 미미했고 날씨마저 예기치 않게 흘러가 생산량이 더 감소하면서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다. 산지에서는 “예견된 참사였지만 대책은 없었다”는 반응이다.
26일 만난 최선동 강릉고랭지채소협의회 회장은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대형마트에 몇백억원씩 할인쿠폰 예산을 지원하는데, 농민들에게는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생산자는 뒷전인가”라며 “경제부총리가 고랭지배추밭에 와서 배추를 들고 사진을 찍고, 대형마트는 ‘반값배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생산 지원 대책은 보이지 않고 그때그때 가격관리만 하고 있으니 농민들의 허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산지 사정을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매봉산에서 배추 농사 5000평을 짓는 이정만 태백매봉산마을 촌장은 “언론에서 ‘금배추’라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금배추를 판 농부들은 부자가 됐는가. 금배추의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정부가 이런 부분을 홍보하면서 산지 지원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언론도 가격만 가지고 금배추라고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릉농협 고랭지채소사업소에서 만난 배추 농가도 “인건비만 놓고 볼 때 올해 남자 일당이 17만원, 여자 일당이 15만원이다. 이를 포함한 생산원가를 건지려면 시세 마지노선은 배추 1망(10kg 내외, 3포기)당 7000원이 나와야 하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려면 8000원 이상 나와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면서 “하지만 배추가격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호들갑을 떤다. 반대로 생산비를 보전할 수 있는 가격대 밑으로 떨어지면, 농가들을 돕기 위한 소비 촉진 등의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농업 기관의 한 관계자는 “농산물은 가격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배추가격이 높으면 다른 대체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홍보를 해야지,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서 “대형마트에 할인쿠폰 예산을 줄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의 캠페인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산지와 소비자들을 위한 정책일 것”이라고 했다.
전상민 태백농협 농산물유통가공사업소 유통팀장은 “갈수록 아열대기후로 바뀌고 있어 고온피해가 빈번해지고 고질적인 연작피해 등으로 고랭지 농사가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수급조절은 둘째로 치고 생산량 자체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면서 “물가주범으로 배추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결국 정부가 나서서 지속적인 생산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기후에 특화된 종자 품종을 육성하고, 수확 후 토양관리를 위한 토양개량제 비용도 지원해주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견될 참사’도 우려
강릉 가을배추 정식 면적 50만평…전년비 20%↑
김장 수요 줄고 물량만 늘어 ‘공급 대란’ 올수도
한편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가을배추의 경우 ‘공급 대란’ 조짐이 감지된다.
8월 하순부터 9월 초 전국적으로 가을배추 정식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난해 가을배추 시세가 좋았던 데다 현재 시세도 양호해 정식 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강릉 송정동에서 만난 배추 농가 박덕화(67) 씨는 “송정동 배추단지와 주변 지역을 포함해 올해 가을배추 정식 면적이 50만평으로, 지난해보다 20% 증가했다”며 “생산단지 뿐만 아니라 배추 시세가 좋아 가정 텃밭에서 따로 심은 물량까지 더하면 올 가을배추 공급 물량이 넘쳐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산지를 함께 둘러본 오현석 대아청과 영업1팀 팀장은 “지난해 가을배추 시세가 좋았고 현재 배추 시세 흐름도 양호해 김장철에 대비한 정식 물량이 크게 늘어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문제는 김장 부재료인 양념채소 가격이 높았던 시기에는 김장 수요가 많지 않았던 전례를 보면 김장 수요는 좋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공급량만 크게 늘어난다면 가을배추 시세 하락이 불가피하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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