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식량위기가 현실화했다. 비료·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내년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곡물 해외의존도가 특히 높아 위기감이 높지만 한편으론 가정 1인당 농식품 폐기량만 연간 71㎏으로 쌀 소비량(57㎏)을 크게 웃도는 모순을 빚고 있다. 식품 손실 감소정책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일본 사례 등을 참고해 식량위기 완화와 탄소감축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농식품 폐기 연 500만t=통계청은 올 1분기 4인가구 식비 지출이 월평균 106만6902원으로 1년 전보다 9.7% 늘었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최근 이같은 ‘밥상물가’ 문제를 연달아 보도하며 국내외 농산물 가격 동향을 타전하고 있다.
문제는 농식품 가격이 크게 오르고 사람과 동물이 굶주림으로 내몰리는 상황에도 적잖은 음식물이 일상적으로 버려진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농식품 유통 및 소비단계 폐기물 감축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농식품 손실·폐기량의 56%가 북미·오세아니아·유럽·한국·일본·중국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경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1년 음식물류 폐기물 지수’를 인용, 우리나라 가정에서 발생하는 1인당 농식품 폐기량이 연간 71㎏으로 일본(64㎏)·중국(64㎏)보다 10.9% 많다고 지적했다. 농식품 폐기물은 가정뿐 아니라 외식업(26㎏)과 소매업(13㎏) 부문에서도 발생해 2019년 기준 국내 농식품 폐기량은 연간 약 50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경연은 국내 공급된 농식품 가운데 최종적으로 소비되지 못한 채 유통·조리·보관 과정 등에서 폐기되는 비율이 14% 상당으로 경제적 비용은 20조원이나 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법제화로 식품 손실 줄이는 일본=일본은 한국과 식문화가 비슷하면서도 농식품 손실을 눈에 띄게 줄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본 농림수산성과 환경성은 ‘2020년 식품 손실량’을 522만t으로 집계해 이달 발표했다. 전년 대비 식품 관련 산업에서 34만t 감소한 275만t, 가정에서 14만t 감소한 247만t이 손실돼 관련 추계를 시작한 2012년 이래 가장 적은 손실량을 기록했다.
농림수산성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외식산업 영업 자제 등으로 인한 수요 감소가 식품 손실량 감소로 이어졌으며, 소매에서 가격할인과 낭비 없는 매입 등 기업의 노력도 크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2001년 ‘식품순환자원 재생이용 촉진법’에 이어 2019년 ‘식품 손실 삭감 추진법’을 제정해 식품 손실 감소를 국민운동 차원으로 확대하고 있다. 관련 부처·지방자치단체·기업·소비자의 역할을 규정하고 ▲식품 손실 감소를 위한 기본 방침 마련 ▲식품 손실 발생 실태 조사 ▲식품 손실 감소의 달(10월) 지정 ▲편의점 과잉 발주 예방 ▲식품 손실 저감 방법 소비자 교육 ▲잔반 없는 회식문화 개선 등을 추진하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국민 1인당 하루평균 식품 손실량은 2015년 139.7g에서 2017년 131.5g, 2019년 123.3g, 2020년 113g으로 감소세가 완연하다.
◆일본 사례 벤치마킹 등 적극 대응을=식품 손실은 먹을 수 있는 상태에서 버려지는 것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포함하는 식품 폐기와 구별된다. 우리나라는 음식물 쓰레기 감축과 처리기 개발·보급 등 폐기물 감축에 관심을 쏟는 반면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식품 손실 관리엔 소극적이다.
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보건복지부 등 각 부처의 식품 폐기 저감과 관리 정책도 유기적인 연계 없이 진행돼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국제사회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유엔(UN·국제연합)은 2030년까지 식품 폐기물 발생을 기준연도(2015년) 대비 50% 감소시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세계자연기금(WWF)도 공급단계에서의 식품 손실과 소비단계에서의 식품 폐기 등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세계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통계청의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평균 음식물 폐기량은 2011년 311.3g에서 2016년 367.95g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식품 손실 관련 법률을 만들어 관련 성과를 평가하는 일본 시스템에 주목한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고 식품 자원의 수입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정책효과를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장영주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산업자원농수산팀장은 “일본은 관리 범위를 식품 공급망의 모든 단계로 확대한 식품 손실 감소정책을 입법화해 추진하고 있다”며 “식품 손실과 식품 폐기 지표를 분리 수집하고 관리 체계는 통합해 정책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