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키워 인력 상시고용 하던 농민들, 반으로 줄여
인건비 줄이려 작목전환까지 … ‘나무 심기’도 유행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2022. 6. 19
농자재값과 인건비 폭등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재배면적을 줄이고 작목을 전환하며 버티고 있다.
충남 부여군에서 26년간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방득현(47)씨는 하우스 딸기를 전문으로 재배해 왔다. 하우스 15동에서 딸기농사를 하던 방씨는 지난해부터 면적을 7동으로 대폭 줄였다. 내년에는 이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해 5동만 딸기농사를 할 계획이다. 왜 이렇게 재배면적을 줄이는지 묻자 그는 “인건비와 농자재값이 너무 올라서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작년부터 딸기농사 규모를 줄이고 있는데, 가장 힘든 게 인건비다. 과거 1인당 5만원이던 인건비가 지난해 3월쯤 지나니 7만5,000원으로 올랐다. 작목이 비슷하면 일손 구하는 시기도 겹치는데, 일손구하기가 전쟁이니 인건비를 더 주면서 데려가려는 경쟁이 생기고… 내일 작업하기로 약속해놓고 9만원, 10만원 받는 곳으로 다 옮겨갔다. 6월까지 하던 딸기수확도 4월에 끝냈다.”
방득현씨는 4년 전만해도 딸기농사로 순수익이 1억원 정도였는데, 지난해에는 인건비 폭등과 농자재값 폭등이 이중삼중 겹쳐 4,000만원 손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뉴스에서 딸기값 좋다고 나오는데, 그건 잠깐이다. 초반에 좋았던 딸기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올해 결산해보면 또 얼마나 마이너스가 될지 모르겠다.”
15동 하우스 딸기 농사를 지을 때 최대 10명까지 인력을 써봤다는 방씨는 “예전엔 사람을 많이 써도 1년 인건비로 4,000만원이 안나갔는데, 지금 15동 고스란히 딸기농사를 짓는다면 인건비만 1억원이 나갈 것”이라면서 주변 농민들 모두 인건비 부담에 허덕인다고 실태를 전했다.
방씨는 하우스 규모만 줄인 것이 아니라 노지농사도 절반가량 줄였다. 고추를 5마지기 심었는데, 올해는 아예 ‘먹을 농사’ 외에는 짓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그나마 품이 덜 드는 콩 농사를 할 계획이다. 농촌에는 최근 콩 심는 사람이 많고, 대추나무 같은 나무 심는 농민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비료·농약 등의 농자재값 폭등도 문제지만 시설자재값 폭등세도 심각한 상황이다.
귀농 3년차에 접어든 박인범(37)씨도 충남 부여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지난 2020년에 이웃 딸기농장에서 실습도 하면서 하우스 8동 규모로 농사를 시작했다. 첫해에는 토경으로 농사지었고, 이듬해부터 고설 수경재배를 하고 있다. 문제는 자재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첫해 토경 딸기농사를 할 때 너무 힘들었다. 자동시설이 아니다 보니 3중 비닐하우스의 2겹의 비닐을 올리고 내리는 것만 아침에 1시간 30분, 저녁에 1시간 30분, 꼬박 3시간이 걸렸다. 물도 3~4일에 한 번씩 주는데 8동을 다 주려면 1~2시간이 걸리고. 도저히 작물을 관리할 시간이 안 나 외국인노동자를 2명 고용했었다. 그게 2020년 가을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력난이 제일 심할 때여서 한달에 320만원이 꼬박꼬박 고정비용으로 나가고, 수확한 딸기를 포장하는 작업을 도맡아 하시는 장모님께도 150만원 가량 드렸다. 첫해 주변에서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딸기농사 성적은 좋았다. 1동에 조수익으로 1,400만원이 생겼고, 8동 모두 1억1,000여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인건비로만 3,000여만원, 기름값 1,000만원, 농장운영 관리비 등 다 빼고 나니 4,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듬해 농사짓는 데 필요한 것들 준비하느라 지출해 결국 모인 돈은 없었다.”
박인범씨는 지난해 딸기농사를 토경이 아닌 고설 수경재배로 전환했다. 5동에 관련 시설을 짓는데 들어가는 파이프값이 1년 전보다 50% 올랐다. 5동 하우스에 최신 시설을 들이는데 3억원이 들어갔다. 인근에 고설하우스까지 구입해 모두 9동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
박씨는 “농지와 시설 등을 매입하는데 7억5,000만원이 들었다. 이 중 4억5,000만원이 대출인데, 다행히 딸기농사가 잘된 편이라 조금 갚았다. 나처럼 농사기반 없이 시작하면 대출이 많아지기 마련이다”면서 “보통 5년은 이자만 내고 6년차부터 원금과 이자를 내는데, 이 시기에 손익분기점이 넘어야 애들 키우면서 농사짓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역귀농을 할 수밖에 없다. 올해 역시 인건비가 너무 버거워, 5월부터 가족들이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농사짓고 있다. 새벽 4시에 수확하기 시작해 저녁 6시에 끝이 난다. 택배, 직거래 …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매달리고 있는데 위태위태한 것이 사실”이라고 농민들의 현실을 전했다.
조광남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사무처장은 “충남은 하우스 규모가 커 30여동 농사를 짓는 건 일반적이다. 상시인력을 쓰려니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면서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외국인노동자를 쓰는 일이 막혔고 인건비에 과부하가 걸렸다. 농자재값 부담도 심각해지고. 결국 궁여지책으로 면적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 농사규모를 대폭 줄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IMF 때도 자고 나면 폐농한 농민들이 생겼다. 연대보증한 것이 잘못되서 밤새 고향을 등지기도 하고, 농촌마을이 쑥대밭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그땐 어르신들이 수십년 모아놓은 돈으로 빚 탕감하고 꿋꿋하게 농사지으면서 농촌이 유지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버틸 농민들이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고 무겁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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