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폐기와 시장격리에도 가격이 회복되지 않던 양파값이 최근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가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수입 등 가격 관리에 나설까 불안한 농가들은 마냥 기뻐하지도 못하고 있다. 전남 함평에서 양파농사를 짓는 조병수씨가 수확이 끝난 양파밭을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다.
수량 형편없어 ‘한숨’ 외국산 판칠까 ‘걱정’
극심한 가뭄에 생산량 급감 값 올라도 농가소득은 줄어
물가안정 명분 수입 추진땐 농민 타격 심각…예의주시
농민신문 함평·고흥·무안=이상희, 함양·남해·창녕=최상일 기자 2022. 6. 13
“양파값이 오르기 시작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저러다 또 외국산이 들어와버리지 않을까 해서요. 쌀 때는 싸서 걱정했는데 이제 값이 오르니 또 올라서 걱정이네요.”
약세를 면치 못하던 양파값이 최근 오름세로 돌아섰지만 농민들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다. 가격이 좀 오른다 싶으면 민간 수입업자들이 수입량을 늘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정부까지 나서서 수입을 추진하는 일이 쉼 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가격 올라도 농가소득은 하락=10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양파값은 상품 1㎏에 1164원이었다. 5월 중순까지 500원대를 유지하다가 5월말 들어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1000원을 넘어섰다. 올봄 가격 폭락으로 여러번 밭을 갈아엎었던 농가 입장에서는 반가워할 일이지만 실제 반응은 다르다. 심각한 가뭄으로 수확량이 감소해 가격이 상승해서다. 값이 올라도 농가소득은 예년에 견줘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경남 함양에서 6.61㏊(2만평) 규모로 양파를 재배하는 이홍주씨(52)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양파값 폭락으로 난리였는데 최근 며칠새 ‘양파값 폭등’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걸 보니 심정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비가 폭등하고 생산량은 급감한 상황을 감안하면 양파값이 올라도 오른 게 아니어서 마냥 웃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명목가격은 좋아도 농가가 실제 손에 쥐는 수입은 예년만 못하다는 설명이다.
◆속 모르는 ‘물가 관리’ 타령=농민들이 더 씁쓸해하는 것은 산지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단기 시세 상승에만 초점을 맞춰 물가상승 요인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남 함평의 양파농가 조병수씨(71)는 “인건비며 비료값이며 모든 물가가 오른 반면 농산물값만 내려서 속이 터졌는데 이제 겨우 양파값 좀 오른다 하니 여기저기서 물가 잡아야 한다고 난리를 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안의 양파농가 박문수씨(75)는 “지난해에는 2개 수확해서 1개에 1만원씩 받아 2만원을 벌었다면 올해는 0.8개밖에 수확을 못해 1개에 2만원을 받아도 농가 수입은 1만6000원밖에 안된다”며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은 이런 상황은 살피지 않고 가격만 보고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에서 3966㎡(1200평) 규모로 마늘농사를 짓는 강영철씨(69)도 “올해 마늘 단수가 생각보다 더 형편없고 1등급 비율도 적어 시세가 좋다고 해도 수입은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정부와 언론에서 농가 속사정도 잘 모르면서 단순히 가격만 보고 물가 운운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수입 우려, 깊어지는 ‘한숨’=농민들이 더 불안해하는 것은 정부가 물가안정 명목으로 덜컥 수입에 나서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특히 수확 초기부터 시세가 강세를 보였던 마늘 주산지 농가들의 우려가 크다.
전용환 전국마늘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장은 “요즘 마늘 1㎏이 80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데 수입가격은 4500원가량이라고 하니 민간업자들은 조만간 수입에 나설 것 같고 자칫하면 정부가 저율관세할당(TRQ) 카드를 꺼내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농가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깐마늘로 수입되면 식당 등 요식업체 수요를 흡수해버릴 가능성이 커 농가들이 입을 타격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박병주 경남 새남해농협 본부장은 “마늘값 오름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혹여라도 물가를 잡는다고 수입을 해버리면 농가는 물론 농협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이경 경남 창녕농협 조합장은 “인건비와 농자재값·유류대 등 모든 생산비가 다 올랐는데 농산물값만 과거 가격을 기준으로 억누르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농민들 다 망하고 수입 농산물로 대체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농산물값 조금 올랐다고 수입 운운하지 말고 국내 생산기반을 적극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