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가격 변동성이 높고 자연재해 위험도 커 농민 개개인이 이를 관리하며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불안정한 농가소득은 개별 농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한다. 마침 새 정부가 ‘식량주권 확보와 농가경영 안정 강화’를 농업분야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이중·삼중 안전장치를 만들어 농가소득을 들쭉날쭉하게 하는 가격 변동과 재해 위험을 막아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형 가격손실보상제도(PLC) 도입=농산물 가격 하락 위험을 방어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한국형 PLC 도입이 거론된다. 미국의 PLC는 농산물 가격이 목표 가격 아래로 떨어졌을 때 차액 일부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한국형 PLC 도입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가격 안정화를 위해 추진해온 재배면적·출하 조절 등의 정책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농가의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선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해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지원이 일부 품목에 집중되고 해당 품목의 생산 유인이 커지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보전 기준가격도 지자체마다 ‘생산비’ ‘생산비+유통비’ ‘시장가격’ 등으로 제각각이다.
이에 이 제도를 개선하고 국가 차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농민단체·국회·학계 등에서 나온다.
특히 농민단체는 적어도 생산비는 보장돼야 농업경영의 지속가능성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민에게 농산물 가격 결정권이 없는 상태에서 요즘처럼 농자재값·기름값·인건비가 치솟으면 농업경영을 지속할 수 없다”면서 “지자체가 다양한 품목에 생산비가 반영된 ‘공정가격’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고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지자체 사업에 국고 지원 근거를 담은 관련법 개정안이 7건 발의된 상태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에선 ‘가격위험완충제도’가 논의돼 주목받는다. 국내 재배규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15개 품목을 대상으로 시장가격을 반영한 기준가격을 설정해 가격이 이보다 떨어지면 차액의 80∼90%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기준가격을 품목별 대표적 도매시장의 평년 가격(최근 5개년 가운데 최고·최저 가격을 제외한 평균)으로 설정해 인위적 가격 지지와 이에 따른 과잉생산이 없도록 했다. 또 특정 작물에 생산 유인이 집중되지 않도록 충분히 많은 작물과 면적을 대상에 포함했다.
제도를 설계한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이 제도는 수급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의 추세적 변화는 반영하면서 단수·수요·수입(輸入)의 일시적 급변으로 나타나는 가격 하락 위험을 완화하는 게 핵심”이라면서 “필요 예측 예산이 연간 1750억∼4820억원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농업보조총액(AMS) 한도인 1조4900억원 안에 넉넉히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보험제도 개편도 필요=앞으로 농산물 가격 변동은 소비자의 수요 변화, 개방 확대에 따른 수입 농산물 증가, 이상기후에 따른 단수 변동 등으로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한국형 PLC가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한 일종의 기초 안전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재난 등으로 불시에 큰 소득을 잃는 경우에 대비한 장치도 추가로 필요하다. 보험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농작물재해보험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상 품목이 한정돼 있고 손해평가를 목측(目測)에 의존하는 등 보험 인프라도 취약하다. 김미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상품 개발이 어려운 비보험 작물 생산농가는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고, 농업 매출과 생산비 정보가 불분명한 농산업 특성은 정부가 위험에 대응하는 고도화된 경영 안정 정책을 펴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보장이 재해로 인한 수량 피해에 집중되는 점도 한계다. 국내 수입(收入)보장보험은 아직 시범단계에 그친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대재해보험(CAT)을 모든 농가가 사실상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해 기초보험 격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에 더해 수량과 가격 피해를 동시에 보장하는 수입보장보험도 오래전부터 발달해 농가경영을 다층적으로 보호해준다”고 했다.
이 이사장도 “미국은 PLC로 평년 시장가격의 85%까지만 보장하고 나머지 위험까지 피하려는 농가는 선택적으로 보험료를 내서 보험으로 보장받는 게 기본 구조”라면서 “우리도 이처럼 농가가 위험을 피해 경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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