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통상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출범했다. 우리 농업계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이어 찾아온 ‘낯선 손님’에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IPEF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10월 제안한 경제통상협력체다. 구체적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큰 그림만 공개된 상태다.
미국은 IPEF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암묵적으로는 중국이 이 지역에서 끼치는 영향력을 억제한다는 구상이다.
IPEF는 자유무역협정(FTA)과도 다르다. FTA가 양자 또는 다자간 협상을 통한 시장 접근성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면 IPEF는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는 국제 규범을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혔다. 관세 철폐를 통한 시장 개방을 추구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IPEF가 다루려는 분야는 필라(Pillar·기둥) 4개로 표현된다. 미국은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공급망 안정성 ▲인프라, 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 4개 필라에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규범을 참여국들과 협의해 만든다는 구상이다.
필라 각각은 세부 의제 5∼10개로 구성되며, 참여국은 4개 가운데 관심 있는 필라만 골라 참여할 수 있다.
IPEF가 관세 철폐를 목적으로 하진 않지만 우리 농업이 안심해도 되는 건 아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지난달 내놓은 ‘CSIS 브리프’에 따르면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필라는 7가지 세부 의제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농업’이 포함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공정’이라는 표현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정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이나 과학적·객관적 근거 없이 이뤄지는 임의적 수입 관리·검사 제도 개선을 논의할 수 있다”면서 “나머지 필라는 참여국간 합의 결과가 합의문 작성 수준으로 그칠 것으로 보이나 무역 필라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문 형식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IPEF로 관세가 추가 철폐되진 않더라도 검역장벽 문턱을 낮추라는 구속력 있는 합의가 이뤄지면 우리 농업은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농업계에선 IPEF가 알셉과 CPTPP에 이은 ‘카운터펀치’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농산물 추가 개방을 꾸준히 요구해온 미국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특히 우리가 동식물 위생·검역(SPS)으로 막고 있는 과수와 쇠고기 문이 활짝 열리면 우리 농업은 심각한 타격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내년 11월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IPEF 발효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속전속결 협상 과정에서 농업 소외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IPEF는 의회 비준이 필요한 FTA와 달리 행정명령에 근거하는데 이는 IPEF를 신속히 출범하려는 미국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듯 IPEF도 미국 정치 지형에 영향을 받기 쉬워 법적 지속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