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북파주농협 이갑영 조합장(왼쪽)이 김상길 군납협의회장과 함께 지난해 배추를 심었지만 올해 군납 방식 변경으로 판로를 잃어버리자 재배를 포기한 밭을 가리키고 있다
올들어 수의계약 70%로 줄어 파주 군납농가 농사포기 속출
국산 농산물만 취급하는 농협 최저가 낙찰로 군납권 못따내
“접경지 지원 특별법 준수하고 경쟁 조달방식 전면 개선해야”
농민신문 파주=오영채 기자 2022. 5. 20
“지난해 배추를 심었던 곳인데 지금은 놀리고 있어요. 팔 곳이 없는데 그냥 재배할 순 없잖아요.”
13일 경기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일대. 이곳에서 무·배추 등을 재배해 군부대에 납품했던 김상길 북파주농협 군납협의회장은 올해 군납용 농산물 재배를 포기했다. 지난해 1만3200㎡(4000평) 규모로 짓던 배추농사는 접었고, 6600㎡(2000평) 규모였던 무농사는 1650㎡(500평)로 줄였다. 그나마 무농사는 하고 있지만 어디다 팔지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상황은 인근 밭도 마찬가지다. 김 회장 밭 맞은편에 있는 논은 지난해까지 감자를 재배하던 밭이었다. 하지만 올해 군납 방식 변경으로 군부대에 감자를 납품할 수 없게 되자 밭주인이 논으로 바꿨다. 이곳에서 1㎞ 정도 이동하니 풀만 무성한 밭이 나왔다. 양파와 양배추가 자랐던 이곳은 지금 방치된 상태다. 재배해도 팔 곳이 없게 되자 밭주인이 올해 농사를 포기해서다.
현장을 함께 찾은 이갑영 북파주농협 조합장은 “국방부의 군납 방식 변경이 접경지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농산물 군납이 전량 경쟁체제로 바뀌는 2025년엔 군납 농산물을 재배하는 모든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 농민들은 북파주농협을 통해 인근 군부대가 필요로 하는 급식용 농산물 전량을 농산물 가공업체에 출하했다. 품목수만 무·배추·양파·마늘·감자 등 60여종에 달했다. 가공업체는 이들 농산물을 식재료로 만들어 군부대에 납품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국방부가 ‘군급식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국방부가 농·축·수협과 수의계약 물량을 지난해 대비 70%로 줄이면서, 나머지 30% 물량이 경쟁입찰을 통해 일반 급식업체나 농산물 가공업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군급식 사업을 따낸 이들이 식재료를 자체 조달하면서 30%에 해당되는 농산물을 재배하던 농민들은 속절없이 판로를 잃게 됐다. 북파주 인근에서 무·배추·마늘 등을 재배하던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한 이유다.
군납 농협과 농민들은 농축산물 군납 방식이 전량 경쟁체제로 바뀌는 2025년 이후엔 군납 농산물 재배가 사실상 힘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로 진행되는 경쟁입찰 특성상 국내산 농산물만 사용하는 농협이 군납권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조합장은 “국내산을 사용하는 농협이 저가입찰에 나설 일반 급식업체들을 이겨낼 수는 없다”며 “결국 2025년 완전 경쟁체제로 가게 되면 군부대 급식은 외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대기업 중심 급식업체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의 군납 방식 변경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하자 북파주농협과 지역농민들의 고민도 깊어만 가고 있다.
군납을 포기한 농민들이 쌀이나 콩 재배를 늘리고, 학교급식용 친환경농산물에도 눈을 돌리면서 벌써부터 지역농산물 수급 불안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 급식업체에 농산물 완가공품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포기했다. 김 회장은 “급식업체에 완가공품을 납품하려면 식재료 특성에 맞게 모든 농산물을 재가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가공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군 접경지역 농촌에 그럴 자금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도권을 공략하는 새로운 판로 확보도 검토했지만, 수도권과 거리가 멀고 다품목 소량 생산하는 농업 특성상 힘들다는 결론만 얻었다.
군납 축소는 농협 경영도 위협하고 있다. 북파주농협의 경우 농산물 판매사업 250억900만원 가운데 군납이 131억4300만원으로 52.6%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경쟁입찰 체제로 바뀌는 군납 방식이 접경지역 농업과 농민에게 큰 위협으로 이어지자, 군납 방식을 기존 농·축·수협 수의계약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또 접경지역 군납 농·축협과 농민들이 마음 놓고 계획생산을 할 수 있도록 2011년에 제정된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을 국방부가 적극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별법 제25조는 ‘국가는 접경지역 안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을 우선적으로 군부대에 납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학교급식으로) 친환경농산물을 먹으며 자란 군인들에게, 커서는 외국산 농산물이나 저렴한 농산물을 먹으라는 것이 국방부 군급식 개선안”이라며 “국방부는 군인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먹을 수 없도록 만든 현행 군납 방식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합장은 “군납 방식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전국 군납 농협과 농민들은 국방부 등이 있는 서울과 세종으로 찾아가 생존권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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