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농가들의 생산비 부담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요금체계 개편 움직임까지 감지되면서 농사용 전기요금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전기요금에 대한 ‘원가주의’ 원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을 결정할 때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든 비용(원가)을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제도적으로는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게 돼 있다. 정부는 3개월마다 석유·액화천연가스(LNG)·석탄의 가격 변화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연료비 연동제)’를 2020년 12월 도입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등 연료비가 급격히 상승했는데도 연료비 인상분은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물가 안정과 국민 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연료비 연동제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수위가 전기요금에 원가가 반영되는 요금 결정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러한 방침은 최근 인수위가 내놓은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담겼다.
전기요금에 원가가 그대로 반영되면 올 하반기 전기요금은 큰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올들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G7(주요 7개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했기 때문이다. 연이어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가뜩이나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전기요금마저 오르면 농가들의 농업경영비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농업경영비 추이를 보여주는 농가구입가격지수는 2021년에 전년 대비 4.7% 올랐는데, 그 가운데 영농광열비는 전년과 견줘 무려 24.7%나 상승했다.
올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2 농업전망’을 통해 광열비·비료비 등 중간투입재 비용이 상승해 농업경영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심각한 적자난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자구책으로 현행 전기요금체계를 손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전은 지난해 5조9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전이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위해 칼을 빼들면 농사용 전기요금제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한전은 농사용 전기가 판매단가가 가장 낮다는 이유만으로 농사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거나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전압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전기를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주택용·일반용·교육용·산업용·농사용 등의 전력으로 구분해 전기를 판매하고 있다. 농사용 전기는 단가가 가장 낮지만, 전체 전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3.7%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이에 농업계는 식량안보가 절박한 상황에서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이나 개편은 식량을 비롯한 농축산물 생산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문병완 농협미곡종합처리장(RPC)전국협의회 자문위원(전남 보성농협 조합장)은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면서 선진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가 자국 농산물시장 보호에 나서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농사용 전기요금에 손을 대는 것은 시대 요구와 역행하는 일이고, 농사용 전기만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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