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산지 쌀값 역계절진폭이 나타나고 있지만, 2차 시장격리 등 쌀 수급대책이 뒤로 미뤄지고 있어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물가안정을 이유로 기획재정부가 버티고 있는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가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지 양곡유통을 담당하는 농협·민간 RPC들도 올해 막대한 적자를 우려하는 등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 산지쌀값 조사에 따르면 4월 5일자 기준 전국 평균 산지쌀값은 4만8464원(20kg)으로 지난해 수확기(10~12월) 평균 5만3535원보다 5071원 떨어져 무려 9.5% 하락을 기록했다. 지난 2005년 양정개혁으로 공공비축제가 도입된 이후 역대 가장 큰 하락폭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에는 2016년 단경기(7~9월)에 8.1%를 기록한 2015년산의 역계절진폭이 가장 컸었다.
문제는 정부의 추가 시장격리가 확정되지 않고 지연되면서 쌀은 물론 산지의 벼값 하락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3월 5일과 15일자 산지 쌀값은 전회 대비 각각 0.4%의 미미한 하락을 보였지만, 3월 25일자에는 1.4%, 4월 5일자에는 1.5%를 보이며 하락 낙차가 더욱 커졌다.
정부가 올해 쌀 공급과잉 물량 27만톤을 시장격리 방침을 세우고 지난 2월 8일 1차로 20만톤 격리를 추진했지만, 14만5000톤만 낙찰 처리돼 산지의 쌀 재고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차 격리에서 미달한 5만5000톤과 나머지 7만톤 등 12만50000톤의 시장격리가 남아 있는 상태다. 3월 31일 현재 농협 재고 물량도 정곡 기준 92만5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1만5000톤보다 31만톤이 늘었다.
이로 인해 농업현장을 외면하는 기획재정부와 농식품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충남의 한 수도작 농가는 “일부 양곡상인들이 벼 대금을 차후에 정산해 주는 조건으로 농가로부터 벼를 매입하고 가격도 시세보다 낮춰 부르고 있다”며 “그마저도 사기를 당할까봐 팔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현장의 RPC 관계자들은 “1차 시장격리에서 탈락한 농가 물량을 추가로 매입해 재고부담이 누증되고 있다”며 “대형마트 등에 출하하는 쌀값이 최근 4만원 초중반으로 불과 2~3개월 사이 5000원 가량 하락했다. 유통업체들의 할인행사 등이 이어져 앞으로 반등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모 지역농협 조합장은 “아직도 야적 물량이 상당량에 달하고 원료 벼 수요는 아예 찾을 수가 없다. 올해 막대한 적자가 불가피할 것 같다”며 “문제는 2021년산 재고가 처리되지 않을 경우 올해 가을 생산되는 신곡 가격을 끌어내리는 악영향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국제유가 인상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적 요인으로 인해 상승하는 물가 안정을 위해 농민과 농산물을 볼모로 잡지 말라고 경고한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쌀값 상승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현 정부가 이젠 쌀값을 방치하고 있다”면서 “전국의 농민들의 농심은 쌀 불안에 타들어가고 있고, 현재와 같은 역계절진폭이 멈추지 않으면 올해 수확기 대란이 초래될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농식품부는 물가만 운운하지 말고 조속한 쌀 시장격리를 시행해 농가경제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