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의 한 양파밭에서 인부들이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농민들은 농산물값은 정체되거나 하락한 반면 인건비는 나날이 치솟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인건비 급등 농촌현장 가보니
조생양파 수확·고추 정식 등 농작업 몰리는데 일손 부족
일당 지난해보다 3만원 껑충
농산물값 오히려 뒷걸음질 “정부, 수급정책 틀 개선해야”
농민신문 무안·고흥=이상희, 함안·함양·창녕=최상일, 안동·영양=김동욱 기자 2022. 4. 15
“한해 농사지어 번 돈,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인건비로 다 내주게 생겼습니다.”
본격적인 영농철로 접어들면서 농민들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농산물값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 치는데 생산비는 나날이 치솟고 있어서다. 특히 비중이 가장 큰 인건비는 천장이 뚫린 듯 큰 폭으로 뛰어올라 산지마다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올 농사 망한다는 하소연이 빗발치고 있다.
◆인건비 폭등세=조생양파 수확과 고추·고구마 아주심기(정식), 벼 육묘 등 농작업이 몰리기 시작한 전남지역은 요즘 말 그대로 일손 구하기 전쟁이다. 보통 초반에는 인건비가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본격적으로 작업이 집중되는 5월 중순께 급상승하는 게 일반적인데 올해는 초장부터 큰 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박대철 무안 청계농협 팀장은 “일당이 지난해보다 3만∼4만원은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규모가 늘었다지만 이마저도 현장 체감도는 높지 않다. 무안군의 양파농가 양문호씨(51)는 “모르긴 몰라도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의 10%도 채 안될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지역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남지역에선 지난해 인건비가 최고 18만원까지 치솟았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함양군에서 6.61㏊(2만평) 양파농사를 짓는 이홍주씨(52)는 “예년에 양파 20㎏ 1망당 작업비가 2800원 정도 들었는데 지난해 3500원까지 상승했고, 올해는 4000원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인건비가 이 정도면 적자 면할 농가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에서 1만6529㎡(5000평) 고추농사를 짓는 권기환씨(62)도 “지난해 5000평 농사에 인건비만으로 3000만원이 나갔다”며 “올해는 인건비가 올라 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수확기에 고추값마저 제대로 안 나오면 농사 하나 마나 한 것 아니겠느냐”고 혀를 찼다.
◆일당 ‘달라는 대로?’=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앞으로 작물별 수확작업과 아주심기 등이 집중돼 인력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시기로 접어들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박영동 서안동농협 조합장은 “고추 아주심기 시기가 다가오면서 최근 인건비가 12만∼15만원선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일당을 높여줘도 제때 양질의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농가마다 아우성이라 농협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전했다.
양수원 전남 고흥 녹동농협 조합장은 “5월 중순부터 마늘 수확이 시작되는데 상황을 보니 인건비가 15만∼16만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인건비는 오르는데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져 농가들은 돈은 돈대로 들이고도 농사일은 제대로 못하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지역과 품목별 인건비 차이에 따른 인력 이동이 워낙 심해 농가들 어려움은 한층 더 가중될 전망이다. 경남 함안의 하우스수박농가 이성재씨(50)는 “일 잘하던 인력들도 다른 작물에서 일당을 더 준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쪽으로 옮겨 가거나, ‘우리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통에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한 작물(양파)의 수확기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다른 작물의 인건비까지도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전남 무안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데리고 작업을 이끄는 한 작업반장은 “지난해 40여명을 데리고 작업했는데 올해는 15명밖에 구하지 못했다”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올해 농작업 인건비가 20만원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인건비 부담에 농사 줄여=급등하는 인건비 부담을 견디다 못해 농사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충북 최대 고추 산지인 괴산지역 농가들도 아주심기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풍면에서 4만9500㎡(1만5000평) 고추농사를 짓는 김광옥씨(70)는 “4월말에 아주심기를 할 계획인데 지역에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인지 고용인력 예약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농사 규모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5∼6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인건비가 너무 올라 올해는 농사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 가족들끼리 고추농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급기야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사 안 짓는게 낫다’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오가는 실정이다. 경북 영양의 고추농가 김진덕씨(65)는 “고추 팔아 번 돈의 50%가 인건비로 빠져나가니 농가들 사이에선 ‘농사 안 짓는 게 돈 버는 일’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며 “올해 햇고추값이 8000원 아래로 떨어지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농가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대책 다시 짜야=영농현장에선 코로나19 사태가 나아진다고 해도 앞으로 농촌 인력난이 쉽사리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력난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선욱 경남 함양농협 조합장(한국양파생산자협의회장)은 “농번기 인건비 폭등 문제로 생산기반이 위협받는 상황까지 와 있다”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인건비 보조 지원과 양파 수확 기계화 저변 확대, 양파 톤백 매입 확대 등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이경 창녕농협 조합장은 “지금 모든 농자재값이 다 올랐고 특히 인건비가 폭등했으나 농산물값은 제자리걸음 또는 하락하는 상황”이라며 “최소한 생산비 이상의 산지 시세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농산물 수급정책의 틀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