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5t 트럭 한대를 채워서 시장에 보내기 위해 2314㎡(700평) 작업을 하는데 외국인 근로자 12명을 씁니다. 양파 뽑고 자르는 일 하는 근로자 한명당 일당 13만원, 망작업· 상차작업 비용까지 하면 인건비만 300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양파를 시장에 보냈더니 하역비·수수료 등 제반비용 제하고 통장에 250만원 들어왔더라고요. 비료값·농약값을 건지기는커녕 제 생돈 들여서 인건비 주는 상황입니다. 평생 양파 농사지었는데, 이제는 자괴감이 듭니다.”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조생양파 5만6198㎡(1만7000평)를 재배하는 박흥수씨(64)는 요즘 속도 모르고 쑥쑥 크는 양파를 보면서 한숨 쉴 기력마저 잃었다. 지난해 10월 파종해서 모종 내고 정식(아주심기)하고 추운 겨울 지나 비료 주고 농약도 치고, 애지중지 6개월여를 길러 이제 수확만 하면 되는데 세상 없는 근심덩어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급등한 비료값·농약값에 최근 기름값까지 안 오른 자재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돈 아끼지 않고 잘 키우면 시장에서 좋은 값을 쳐줄 거라고 믿고 농사를 지으며 버텼는데 수확기에 와서 그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지난해보다 3만∼4만원 오른 인건비에도 인력 구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여서 여기저기 아는 사람마다 다 전화를 돌려 겨우 인부를 구해 작업을 하고 있지만 양파값보다 비싼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농협에서 받아 쓴 선도금 3000만원이며 외상 자재비도 못 갚을 판인데 인건비는 줘야 하니 이렇게 농사를 지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박씨는 말한다.
무안군 몽탄면에서 양파 농사지은 지 10년 된 청년농 김영상씨(32)는 아예 손익계산서를 뽑아봤다. 지난해 8월말 육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본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조생양파 9917㎡(3000평)에 대한 종자값과 종묘비를 합쳐서 71만5000원, 비료값이 157만원, 농약값이 44만원, 멀칭비닐 등 자재비가 280만원, 기름값 등 농기계 비용이 620만원, 비료·농약 살포 등 관리 인원 인건비 367만원이 들었다. 그 외에 물값이나 농기계 수리비 등 자잘한 것들은 다 빼더라도 김씨가 3000평 양파재배에 들인 돈이 1500만원이 넘는 셈이다.
이제 수확을 해서 팔아야 하니 마지막 수확 작업비를 더해야 하는데 김씨는 계산을 포기하고 말았다.
들리는 얘기로는 지금 작업하면 뽑고 자르고 담는 데만 평당 2500원이 든다는데, 상차비 운송비까지 하면 양파 출하하는 데만 1평당 3500원이 넘게 들게 생겼다.
얼핏 생각해도 작업비만 1000만원이 넘게 들어갈 텐데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이 비용이 올라갈 것이 불 보듯 뻔해 계산할 엄두도 못 내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일당이 17만원까지 올라갈 거라는 이야기가 도는데 그러면 농가가 지불해야 하는 인건비가 50% 가까이 증가하는 셈”이라면서 “대충 계산해봐도 1500만원은 들 텐데 지금까지 들인 생산비 총액과 맞먹는 비용을 수확하는 인건비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파값이라도 좋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건비와 달리 양파값은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마음은 지옥이다. 최근 양파값 1㎏ 상품 500∼600원을 기준으로 하면 김씨가 3000평을 출하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최대 3600만원 정도다. 여기서 운송비·하역비·수수료 등 제반비용을 제하면 김씨는 1년 농사지어서 손에 쥐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나마 빚이라도 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김씨는 상황이 악화일로인 것은 정부의 잘못된 대응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주변에서 이제 양파농사 안 짓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고 저도 양파농사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어느 순간 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해버려서 양파 생산량이 급감하고 양파값이 급등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요. 결국 물가안정을 이유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하는 정부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농산물 가격을 폭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겁니다.”
[농민신문] “뼈빠지게 일해도 빈손” 자조…빚더미 농가 속출 우려 
[농민신문] 정황근 “CPTPP, 농민과 충분히 상의하고 대책 추진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