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서 통상 조직을 어디다 둬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성을, 외교부는 탈환을 외치며 연일 여론전을 펼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개별 부처에서 공개적인 발언이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경고할 정도다.
논리도 팽팽하다. 외교부는 국제통상 질서가 외교·안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경제안보가 국가안보의 핵심요소가 됐다고 목청을 높인다. 산업부는 통상문제는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어 산업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맞선다. 통상 기능 정체성을 경제와 외교 어디에서 찾는지에 대한 ‘행정 철학’의 문제이므로 논란은 영원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런 와중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향한 정부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모른다. 8일 정부가 개최한 ‘제6차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정부 가입 신청, 다음 정부 가입 협상’이라는 큰 틀에서 추가 피해지원과 향후 액션 플랜 등에 대해 최종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올 1월 “4월 안에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겠다”는 발언을 다시 한번 공식화한 것이다.
CPTPP는 개방률이 100%에 육박하는 데다 기존 회원국 11개 나라 대부분이 농업선진국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농업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 정부 스스로도 CPTPP에 가입하면 향후 15년간 연평균 최대 4400억원의 농림축산업분야 생산 감소를 예상했다. 중국이 CPTPP에 가입하거나, 위생·검역(SPS) 규범 이행 과정에서 사과·배 등 미개방 품목의 시장이 추가로 열린다면 연간 생산 감소액은 2조8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이란 비공식 추정도 있다.
농업의 명운을 가를 엄청난 사안인데도 산업부는 제조업계 편익이 크다는 식의 일방 주장을 펼치며 지난 1년3개월간 CPTPP 가입을 밀어붙였다. CPTPP 가입이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농축수산업에 어떤 피해가 있을지에 대한 정보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3월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CPTPP 대국민 공청회’는 이런 태도의 결정판이었다. “국가가 한번이라도 농업계와 의논이라도 한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산업부 담당 국장은 마이크를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에게 넘겼다. 2시간으로 예정한 공청회는 제대로 된 발표·토론 없이 40분 만에 엉성하게 끝났다. 피해분야에 대한 답변을 하지도 못할 거면서 통상 업무를 왜 수행하냐는 비판을 받기 충분한 대목이다.
세계화를 주창한 김영삼정부는 통상 기능을 산업부(통상산업부)에 뒀다. 1998년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외교부(외교통상부)로 넘겼고 15년이 흘러 2013년 박근혜정부 땐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로 다시 이관됐다. 9년이 흐른 2022년 윤석열정부는 통상 기능을 어디다 둘 것인가.
농업계 속내는 불편하고 복잡하다. 통상 기능이 외교부로 가야만 제조업 등에 편향된 업무 추진이 완화될 것이란 의견이 대체적이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가로 이익을 보는 기업으로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조성하기로 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초라한 실적(2017∼2021년 1605억원)을 보더라도 산업부 존치는 안될 말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외교부로 환원되더라도 명분 쌓기 경향이 심한 부처 특성상 농업계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도 적지 않다.
2013년 이전 통상업무를 담당했던 농식품부 관계자는 “철저한 경제논리가 횡행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외교부 공직자가 ‘과거 한국전쟁에 도움을 줬으니 우리가 양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통상은 각 부처와 협업해 넓은 시각으로 국익 전체를 조망하고 협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소재·부품·장비 공급망도 중요하지만 식량안보 또한 귀중하다. 당장 끼니를 이을 밥상이 어쩌면 공산품을 판매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반도체, 자동차 타이어를 씹어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무역대표부(USTR)가 통상 업무를 맡는 미국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어떨까.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사는 농민’을 농업 비전으로 내건 윤석열정부가 5월10일 시작한다. 통상 조직을 어디다 두는지를 보고 새 정부의 농정 방향을 가늠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