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반대하는 농업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대 이해당사자인 농민을 외면한 채 정부가 ‘임기 내 가입신청’ 행보를 고집하고 있어서다. 사진은 4일 ‘CPTPP저지 한국 농어민 총궐기대회’에 참여한 농민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모습. 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CPTPP 반대 왜?
회원국 대다수 농업강국 해당 기존 FTA보다 개방수준 높아
중국 가입 확정되면 피해 확대
정부, 4월 가입신청 행보 속도 의견수렴 없고 대책도 되풀이
농민과 충분한 소통·협상해야
농민신문 홍경진 기자 2022. 4. 8
4일 국회 인근에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경찰 측 보수적 추산으로도 3000명. 거대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저지하겠다고 모인 농민들이었다. 이달 안에 CPTPP 가입 신청을 마무리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농업계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
◆“강행 땐 농업 미래 없어”=CPTPP는 일본·호주·캐나다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하는 초대형 경제동맹이다. 회원국 다수가 농업강국으로 분류되고 개방수준이 기존 FTA보다 높아 우리나라가 가입할 경우 농업부문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회원국들이 우리나라의 신규 가입에 동의해주는 조건으로 별도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높다. 일본은 CPTPP에 가입하면서 호주에 연 8400t의 쌀 무관세 쿼터를 허용한 선례가 있다. 특히 CPTPP는 깐깐한 동식물 위생·검역(SPS) 규범을 적용하고 있어 우리나라로서는 광우병, 과수 화상병 등 동식물 전염병 발생국으로부터의 농축산물 수입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CPTPP 시장개방 효과를 분석한 결과 국내 농업분야엔 15년 동안 연평균 853억∼4400억원의 생산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됐다. 2020년 농업생산액 상위 품목인 감귤(9896억원)·양파(9431억원) 부문의 절반이 허물어질 정도로 충격을 받는 셈이다. 농경연의 이같은 분석은 중국의 CPTPP 가입을 고려하지 않은 추정치여서 개방효과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9월 CPTPP 가입을 신청한 중국이 회원국 대열에 동참할 경우 과수·채소 등 국내 농업분야 전체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CPTPP저지한국농어민비상대책위원회’가 “CPTPP를 막지 못하면 우리 농업의 미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정부 ‘4월 가입신청’ 일방적 행보=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CPTPP 가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되는 여건에서 경제블록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제 통상질서에 참여할 필요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사전절차에 해당하는 회원국 비공식 협의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CPTPP 가입 관련 국내 사회적 논의에 착수했다. 산업부는 “CPTPP 가입은 10년 동안 검토해온 과제”라며 “대내외 준비작업이 착실히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가입 신청을 위한 필수절차로 지난달 25일 열린 공청회는 농민단체들의 강한 반발 속에 파행으로 치달았지만, 정부는 ‘4월 중 가입신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공청회 자료를 통해 ▲국산 농산물 안정적 수요기반 확보 ▲농가 소득·경영안전망 확충 ▲농촌 정주여건 개선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 농업분야 피해보전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농업계는 정부 주도의 간담회·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이 요식절차에 불과하고 대책으로 내놓은 지원방안도 새로운 게 없다고 인식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들이 공청회 당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CPTPP 가입을 전제로 한 행정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이해당사자인 농어업분야와 즉각 협의에 나서라”고 촉구한 배경이다.
◆농민과 소통할 대내협상 필요=CPTPP에 대한 일반 국민의 호응도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가입조건으로 일본이 후쿠시마산 농식품 수입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실제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대만은 이같은 일본의 요구를 받고 후쿠시마산 농식품 수입을 재개한 상태다. 방사능 오염 우려가 높은 일본 식품 수입을 허용할 경우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이 촉발한 ‘광우병 사태’ 같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가입 실익이 크지 않을 CPTPP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CPTPP 반대 목소리는 정부의 구체적인 입장 변화가 나올 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CPTPP저지비대위는 4일 총궐기대회에 이어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농협도 11일 농정통상위원회를 열고 CPTPP 추진 반대 성명을 채택하기로 했다. 농민의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 소속단체 등은 13일 여의도에서 CPTPP 저지 대규모 상경집회를 갖기로 했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는 앞서 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누리집에 ‘농업 말살하는 CPTPP 반드시 철회해야 합니다’란 글을 올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새 정부에 230만 농민 생존권과 5000만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 CPTPP 가입 철회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CPTPP를 추진하려면 먼저 기존 FTA의 영향과 지원대책 효과 등을 정확히 분석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을 소홀히 한 채 일방적인 가입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CPTPP 피해영향평가는 시장개방 추가 확대로 인한 농산물 소비대체와 생산대체 문제를 반영하지 않고 품목별 피해만을 추산해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고, 정부 대책엔 농민과 국민이 수용할 만한 농가소득과 식량안보 확보방안이 담기지 않았다”며 “국내 이해관계자인 농민과 충분히 소통하는 대내협상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