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중 CPTPP 가입 신청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농축수산업계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인근에서 열린 ‘CPTPP저지 한국 농어민 총궐기대회’의 모습. 이날 현장에는 많은 농어업인이 모여 CPTPP 가입 즉시 철회를 촉구했다.
CPTPP 가입시 농업부문 15년간 피해규모 6조6000억
개방화 취약 농어업분야 피해 막심…농업인 생존권 보장해야
농축산물 위험분석절차 관련
수입국 의무 강화에 따라
신규 품목 시장개방 가능해져
SPS 정차 진행 중인 품목은
사과(뉴질랜드·일본)·배(일본)·복숭아(호주) 등
수산업계는 수산물 시장개방뿐만 아니라
수산보조금까지 폐지 우려로 심각
CPTPP 가입 시 이미 체결된 FTA보다
농축수산업 부문에 막대한 영향 미칠 것
농수축산신문 김동호·박현렬·이문예·박세준 기자 2022. 4. 5
정부가 이달 중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강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농축수산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농축수산업계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정부의 일방통행식 불통행정을 비난하며 그 심각성을 전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에 CPTPP 가입 추진 배경과 정부가 밝힌 농림축수산업 국내 보완대책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농축수산업계의 입장과 전문가들로부터 보완대책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 CPTPP 가입 추진 배경은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11개 국가(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호주, 뉴질랜드, 일본,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가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지난 2월 1일부터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가장 주목해야 할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해부터 가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정부는 ‘CPTPP는 RCEP에 이어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메가 FTA’라고 수식하며 가입 추진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CPTPP의 경제규모(2020년 기준)가 10조7000억 달러로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고, CPTPP 회원국과의 교역 비중(2021년 기준)이 우리나라의 전체 교역규모의 24%를 차지하는 등 전략적·경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입 추진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CPTPP 가입은 지난 10년 간 검토해 온 과제로 지난해 12월부터는 이를 위해 관련 부처와 합동으로 지역간담회와 업종별 협의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절차도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3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는 CPTPP 가입을 검토하면서 수산보조금, 디지털 통상, 국영기업, 위생검역 등 국내 제도를 정비했다”고 설명하며 “최근 중국, 대만의 협정 가입 신청, 세계 최대 메가 FTA 발효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경제 질서 변화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 더 이상 협정 가입에 관한 부처 간 논의에만 머물기는 어렵다”고 밝힌바 있다.
교역·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적·전략적 가치, 개방형 통상국가로서의 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농축수산업계 피해 규모는
CPTPP는 높은 수준의 개방과 새로운 통상규범 도입을 통해 참여국 간 실질적인 무역장벽을 허물고 한 차원 높은 개방과 구조개혁을 요구한다. 여기에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의 기체결 FTA 대비 추가 관세철폐로 국내 수입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해외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어 제조·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기회로 여겨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방화에 취약한 농업분야로서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농축수산업계가 정부의 CPTPP 가입 방침 철회를 강도 높게 촉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CPTPP 가입 시 농업부문에서 15년간 연평균 853억~4400억 원 가량의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15년간 누적 피해액은 6조6000억 원에 달한다.
농경연은 한-미 FTA 수준(98%)으로 개방하거나 일부 품목 민감성 반영 시 CPTPP 가입으로 인한 추가 개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기체결 FTA를 통해 개방은 됐으나 양허 기간이 끝나지 않은 경우에도 CPTPP 가입으로 관세가 즉시 철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수의 경우 호주, 칠레, 멕시코, 페루산 오렌지·포도 수입 증가로 국내 감귤·포도 시장의 피해가 우려되며 곡물은 호주산 보리 수입 증가로 국내 생산이 줄고 생산·소비 대체로 쌀 생산액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축산물은 호주(소고기), 멕시코(소고기, 돼지고기), 캐나다(돼지·닭고기), 뉴질랜드(전지분유)산 축산물 수입증가에 따른 국내 생산 감소가 우려된다.
임산물 또한 베트남, 말레이시아, 일본 등의 국가로부터 수입이 증가하면서 밤, 감, 표고버섯 등의 생산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농축산물 수입국의 의무 강화에 따라 사과, 배 등의 위생검역조치(SPS) 조기 해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농축산물의 위험분석절차 관련 투명성 제고 등 수입국 의무 강화에 따라 그동안 개방되지 않았던 품목의 신규 시장개방도 가능해진다. SPS 절차가 진행 중인 품목은 사과(뉴질랜드, 일본), 배(일본), 복숭아(호주) 등이다.
부경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수산 분야는 CPTPP 가입 후 15년간 연평균 69억~724억 원 정도의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태별로는 양식, 근해, 연안, 원양, 내수면 어업, 품종별로는 어류, 갑각류, 패류, 연체류, 해조류 순으로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동일어장에서 조업 중이고 주력 양식품종과 생산구조는 유사하지만 생산량 차이가 큰 중국이 CPTPP에 가입한다면 국내 수산업의 피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 김, 전복, 바지락 등 대일 수출품목 또한 중국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국내산 소비 대체 효과가 큰 신선·냉장 형태의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증가도 우려된다. 일본산 수산물 우회 수입으로 인한 먹거리 안전 우려가 확산될 경우 국내의 전반적인 수산물 소비 위축으로 생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정부, 충분한 피해보상·경쟁력 제고 지원 등 보완대책 방향 제시
이같은 우려에 정부는 CPTPP 가입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피해에 대한 충분한 제도적 보상과 취약분야 경쟁력 제고 지원 확대 등을 보완대책 방향의 기본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농림축산업 분야에 대해선 △피해보전직불·폐업지원 제도 개선 △피해품목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재정투입 확대·제도 개선 △국산 농산물 소비촉진 지원 △소득·경영 안정·인력 양성 등 지원 확대 △정주여건 개선과 복지 지원 확대 등 5가지 보완대책을 제시했다.
먼저 수입 농축산물 증가에 따른 피해 보전을 위해 2026년 만료되는 피해보전직불을 연장하고 2020년 종료된 폐업지원 제도를 재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피해보전직불제는 FTA 이행으로 수입량이 급격히 증가해 일정 수준 이하로 가격이 하락한 품목에 대해 일부를 보전하는 제도이며, 폐업지원제도는 FTA로 인해 재배·사육을 이어나가기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품목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또한 피해품목의 경쟁력 확보와 피해 최소화를 위한 생산·유통 인프라 확충, 농업인 역량 강화, 연구개발(R&D) 확대, 금융·세제 지원 제도 강화·개선 등의 추진 방향도 제시했다. 품목별 영향과 중장기 발전 방향 등을 고려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산 농산물 수요 기반 확충을 위해 초등학교 과일간식,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등 먹거리 지원사업은 농식품바우처로 통합·확대하고 국산 농산물 구매 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도 검토한다.
아울러 공익직불제 확대개편, 청년·후계농·고령농 지원 강화, 재해 대응체계 확충 등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 전환 지원을 확대하고, 농촌지역의 정주여건 개선, 복지 지원 확대·내실화 추진 등 농업인 삶의 질 제고와 도·농 불균형 완화를 위한 노력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 농축산업계 “피해영향평가 결과 공개·의견수렴 절차 부재...가입 안돼”
농축산업계는 CPTTP 가입을 기존의 FTA 가입 때보다 더욱 엄중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거의 100%에 가까운 관세가 철폐되고 이로 인해 밀려올 수입 농축수산물로 적지 않은 직·간접적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농축산업계는 피해 대상과 범위 등에 대한 영향평가결과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고 업계의 피해 경감 대책 등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견수렴 절차도 형식적 행위 즉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현재 정부가 CPTPP의 긍정적인 효과들을 부각하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엔 귀를 닫는 바람에 농축산업계는 말살 위기에 놓이게 됐다”며 “제대로 된 영향평가도 없는 상황에서 CPTPP 가입 논의 자체가 협의와 협상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농업계 6개 단체와 수산계 3개 단체 등 총 9개 농업관련 단체들이 꾸린 ‘CPTPP저지한국농어민비상대책위원회’도 “역대 최고 수준의 시장개방을 지향하는 CPTPP에 가입 시 이미 체결된 어떤 FTA보다도 농수산업 부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후쿠시마산 농산물 수입 본격화 우려와 함께 국민 먹거리 안전을 위협할 소지도 있는데도 정부가 CPTPP 협정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강행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농수산 관련 단체들은 단체행동을 통해 정부에 CPTPP 가입 반대의 뜻을 강력하게 전달하고 농업인들의 생존권을 지켜나가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지난 4일에도 CPTPP저지한국농어민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 여의도에서 ‘CPTPP저지 한국 농어민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목소리로 ‘CPTPP 가입 반대’를 외쳤다.
오는 13일에도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으며, 향후 정부가 농업계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전국적·산발적 집회 등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수산업계 역시 수산업 보호대책 없는 CPTPP 추진은 절대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산업계는 CPTPP로 인한 수산물 시장개방뿐만 아니라 수산보조금까지 폐지될 우려가 있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CPTPP는 수산보조금 규율을 담고 있는 최초의 지역무역협정으로 과잉어획상태에 있는 어족자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과 불법·비보고·비규제(IUU)어업에 기여하는 보조금을 금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경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보조금은 면세유와 영어자금으로 어업인들에게 지급되는 보조금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보조금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수산업계에서는 CPTPP 가입은 수산업을 말살시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는 “정부는 CPTPP가 수산업에 미칠 피해에 대한 분석이나 대책 마련없이 CPTPP 가입신청을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며 “CPTPP가입으로 어업용 면세유에 유류세가 과세되고 수산 정책자금 제한 등이 현실화 될 경우 어업경비 상승으로 경영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수총은 “어업경비 증가로 인한 수산물 가격상승은 결국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사회적 논의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이 생략된 CPTPP가입은 알맹이 빠진 요식행위이며 수산업 보호대책 없이는 절대 추진돼선 안된다”고 성토했다.
# 통상 전문가, 구태의연하고 미흡한 CPTPP 대책 지적
통상 전문가들은 앞서 정부가 제시한 CPTPP 대책이 구태의연하다고 지적했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지금까지 언급된 농림업 분야 CPTPP 대책은 사실상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CPTPP는 우리나라 시장개방의 종착점으로서 과거의 FTA와는 질적으로 다른데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FTA를 맺을 때마다 나왔던 것들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가령 현행 피해보전직불제의 경우 지원품목으로 선정되기 어렵고 선정되더라도 지원액수가 적으며 열대과일 수입에 따른 국산 과일 수요 감소 같은 간접피해 보상은 아예 전무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기존 대책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는 점을 비판했다.
따라서 임 교수는 “FTA를 할 때마다 나왔던 대책들의 성과를 충분히 시간을 갖고 엄밀히 평가해 한계와 문제점을 파악한 후 농림업계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상의해 훨씬 더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CPTPP 농림업 대책에 검역 부문이 빠진 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PTPP에 대해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부문이 SPS 부문이다”며 “CPTPP에 어떻게 대응해서 검역이 가진 본래적 기능을 어떻게 활성화시킬지 등에 대한 말이 없어서 아쉽다”고 평했다.
특히 서 위원은 “지금 우리나라는 검역 전문인력이 굉장히 부족하다”며 “검역기술과 장비를 활용하는 건 물론 SPS(위생검역)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언제라도 현장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검역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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