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충남 부여군 석성면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강해환씨가 꿀벌이 줄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강씨 앞에 보이는 하얀 상자가 꽃가루받이(수분)를 해주는 꿀벌이 든 벌통이다. ②꿀벌이 수박 시설하우스에 설치된 벌통을 드나들고 있다.
시설농가, 벌 제때 못 구해 작업 늦어 품질 하락 우려
노지 과수농가도 ‘발동동’ 인공수분으로 비용 상승
농민신문 부여=이연경 기자 2022. 4. 4
충남 부여군 석성면에서 스무해 넘게 수박농사를 지어온 강해환씨(66)는 올해 작황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올초 발생한 전국적인 꿀벌 실종 사태 때문에 제때 꿀벌을 구하지 못해서다.
강씨는 “3월 중순에 비닐하우스 한동당 꿀벌 봉군 한통을 넣어야 했는데 필요량 가운데 절반도 구하질 못했다”며 “급한 대로 외국인 근로자 한명당 일당 18만원을 주고 사람 손으로 일일이 꽃가루받이를 했지만, 농사 적기를 놓쳐버린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수박은 꿀벌을 통해 꽃가루받이(수분)를 하는 대표적인 작물로, 국내 수박농가 가운데 약 90%가 꽃가루받이에 꿀벌을 이용한다. 덩굴 약 15∼17마디 사이에 피는 꽃 3개에서 특상품 수박이 생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 꽃이 핀 짧은 시기에 꿀벌을 투입해 꽃가루받이를 해줘야 한다. 보통 3월부터 4월초, 강원·충북 지역 같은 경우는 4월말까지 꽃가루받이가 진행되는데, 전국적으로 꿀벌 공급이 부족해 농가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강씨는 “인건비를 더 쓰고도 수분작업을 제때 하지 못해 수박 품질이 나쁠까 걱정”이라며 “게다가 수확기까지 늦어져 제값을 못 받는 건 아닌지 착잡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경용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은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진 현상이 수박 작황에 미친 피해규모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국내 수박 생산량의 60% 이상이 5∼7월에 출하되는데, 재배 시점상 수박이 특히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시설재배 작물인 딸기와 멜론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미정 전남 담양군농업기술센터 연구사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담양은 딸기 출하시기가 5월까지라 4월 중순까지는 꽃가루받이에 꿀벌이 필수적”이라며 “이 지역 딸기농가 20여명이 꿀벌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구나 담양에선 딸기 후기작으로 재배하는 멜론도 꽃가루받이에 꿀벌이 필요하기 때문에 꿀벌 부족 상황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 연구사는 “꽃가루받이에 꿀벌만 쓰는 수박과 달리 멜론은 뒤영벌도 사용할 수 있지만, 재배법상 뒤영벌을 추가 구매하는 비용 때문에 농가 경영비가 올라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지 과수농가의 상황도 좋지 않다.
전남 나주시 공산면에 있는 6611㎡(2000평) 과원에서 플럼코트를 재배하는 이완기씨(56)는 “원래 플럼코트는 화분매개곤충(꽃가루를 옮겨 작물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주는 곤충)인 꿀벌로 수정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난달 30일 사람을 투입해 인공 꽃가루받이를 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예년 같으면 꽃가루에 벌이 하도 달라붙어 벌을 쫓아가며 일해야 했는데, 올해는 벌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며 심상찮은 분위기를 전했다.
정철의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화분매개곤충이 국내 농산물 생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는 약 6조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꽃가루를 옮기는 기능의 70% 정도는 꿀벌이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꿀벌이 20% 감소했을 때, 과수·과채·특용작물 생산량의 약 5%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수박이나 딸기 등의 시설작물은 물론 사과·살구 등 노지과수도 꿀벌 의존도가 크다”며 “참깨·들깨 등의 유지작물, 또 향후 남부지방에서는 종자 채종용 양파에도 이번 꿀벌 실종 사태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봉군 밀도가 높긴 하지만 올해는 꿀벌 17.2%가량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미 농산물 생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상황 추이를 심각하게 분석하고 대처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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