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양파를 수확하는 밭은 분주했고, 갈아엎은 밭은 황량했다. 지난달 28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의 한 양파밭에서 농민들이 잎양파를 수확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 양파가격 및 수급 대책을 촉구하며 갈아엎은 밭이 황량한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다. 한승호 기자
이대로면 더 이상 농사지을 농민은 없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022. 4. 3
“내가 양파 농사만 40년째인데, 지금 양파 가격이 20~3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았는데, 양파 가격은 변함없이 그대로인 거다. 비교하자면 30년 전 어림잡아 하루 5,000원 정도였던 인건비가, 지금은 최소 13만원이다. 20배 넘게 훌쩍 뛰었다. 광주까지 가는 4톤 트럭 운송비도 5만원에서 50만원으로 10배 올랐다. 비료·농약 등 농자재 가격은 말할 것도 없다. 농산물 가격만 오직 제자리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연일 농산물 가격이 물가 상승의 주범인 양 떠들어대고, 물정 모르는 정부는 수급조절 명목으로 연일 농산물 가격만 때려잡으며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계속 이대로면 앞으로 농사지을 농민이 과연 몇 명이나 남을까 싶다.”
지난달 28일,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를 마주한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일원의 비탈진 밭에선 잎양파 수확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그간의 노력을 거둬들이는 수확의 현장을 지켜보고 선 농민 이승윤(66)씨의 입에서 한숨인지 추운 날씨 탓의 입김인지 모를 것이 하염없이 새어 나왔다. 이날 수확이 진행되던 밭은 생산비도 못 건질 가격 탓에 몇 주 전 산지 폐기한 이씨의 다른 양파밭과 바로 맞닿아 있었다. 수확 현장답지 않게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도매유통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땅끝의 수확 현장을 방문한 지난달 28일 기준 조생 햇양파의 kg당 도매가격은 중품 기준 428원이었다. 상품 역시 고작 518원에 거래됐다. 그리고 25년 전인 지난 1997년 양파 중품의 kg당 평균 도매가격은 603원. 상품의 경우 624원에 거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믿기 어렵지만, 오히려 25년 전 양파 가격이 지금보다 높은 상황이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변함없이 25년 전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농산물 가격은 으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힌다. 양파와 마늘, 사과, 배추 등의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라치면 언론에서는 소비자 시장 물가 부담을 운운하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기 바쁘고, 이 경우 농업·농촌을 위해 존재하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선 수급 안정 명목의 ‘농산물 가격 떨어트리기’ 대책을 재빠르게 내놓기 일쑤다. 저장 물량 방출과 수입 확대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내놓은 물가 안정 대책이 소비자의 만족을 살 만큼 효과적이지도 못해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곁눈질을 받는 경우 또한 부지기수다.
농산물 가격은 앞서 확인했듯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이씨의 말처럼 농자재 가격은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전 세계에 퍼지고, 고령화된 우리 농촌에는 빈 톱니바퀴를 메워줄 외국인력의 입국이 철저히 제한됐다. 인건비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치솟았다. 우리나라에서 한 달만 일하면 자국에 돌아가 땅 한 마지기를 너끈히 산 뒤 집을 짓고도 남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여기에 전 세계 무역 분쟁의 여파가 들이닥쳤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료값과 비료값, 유류비는 연일 상승세를 경신 중이다.
오늘날, 현장의 농민들은 많게는 몇 배로 불어난 생산비를 부채로 감당함과 동시에 부족한 인력을 본인의 시간으로 메꿔 농산물을 생산해내고 있다. 식량주권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는 요즘 감사하게도 농민들은 아직 농촌을 지키고 있지만, 정부가 지금처럼 농정에 큰 변화를 꾀하지 않고 헛다리만 짚는다면 우리에겐 수급을 안정할 만한 대상이, 농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 거란 불안감이 엄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