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낮 12시, 경북 성주군 성주조합공동사업법인 공판장. 주차장은 벌써 농민들이 타고 온 1t 트럭과 승용차로 만원이었다. 본래 3월초면 참외 출하량이 전체 10%도 되지 않는다. 공판장을 절반 정도 메우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날은 10㎏들이 참외상자가 경매장 바닥 전체에 깔렸다.
이광식 성주조공법인 대표는 “오늘 하루만 8700상자가 넘게 출하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 4990상자에 비해 70% 이상 많다. 이날 경락가격은 이른바 ‘센터’ 등급 3단위(31∼40개들이)가 평균 6만원선. 지난해 이맘때(9만원선)보다는 낮지만 평년(5만8000원선)보다는 높다. 이 대표는 “가격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물량 증가를 고려하면 농민들이 성난 표정으로 귀가하지는 않을 시세”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6일 후면 발효 10년이 된다.
2012년 3월15일 발효일을 전후해 농업계엔 공포심에 가까운 위기감이 가득했다. 오렌지·체리·쇠고기 등 미국산 농축산물이 저가와 고품질을 무기로 국내로 밀려들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성주군과 성주조공법인이 2020년 펴낸 <성주 참외 50년사>를 보면 수입 오렌지에 대한 두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여러 페이지에 걸쳐 “한·미 FTA 체결에 따른 오렌지 수입 확대로 참외 소비 부진이 우려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3∼4년 전부터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대형마트 오렌지 매대는 과거와 견줘 크게 줄었고 흔했던 할인행사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참외농가 정인휴씨(66·성주읍)는 “정부 지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농민들 스스로 ‘고품질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재배기술이 크게 올라갔다”며 품질 상향 평준화를 요인으로 꼽았다.
만감류 산지에선 우려스러운 변화가 감지된다. 올 7월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감류가 미국에서 재배돼 역수입되는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박진석 제주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상무는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황금향> <카라향> 등 2010년대 출하가 활발해진 만감류 품종만 다섯손가락을 넘는다”면서 “위기감을 발판 삼아 소비자 기호 변화에 적극 대응한 결과 만감류시장이 오히려 커졌다”고 말했다.
고태호 서울 가락시장 서울청과 경매사는 “미국 농장주연합회에서 오히려 한국시장을 겨냥해 <카라향>과 비슷한 <큐티스>라는 신품종 만감류를 재배하고 있고 7월께엔 캘리포니아산 <한라봉>이 역수입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한·미 FTA가 독이자 약이 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가올 ‘메가 FTA 시대’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도수 한국참외생산자협의회장(성주 월항농협 조합장)은 “2월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으로 과일시장 개방 문이 더 넓어졌고 4월엔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공식 선언하겠다고 했다”면서 “개방 확대에 따른 농업부문 피해 최소화에 승부를 걸어야 할 때는 지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