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김경채 전남 해남 황산농협 조합장(왼쪽)과 보리 재배농민 임성렬씨가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보리밭을 살피고 있다. ②전남 영암 무화과밭. 황성오 영암 삼호농협 조합장(오른쪽 두번째)과 박서홍 전남농협지역본부장(〃세번째), 문수전 NH농협 영암군지부장(맨 오른쪽)이 가뭄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전남·경남 월동작물 생육장해
보리밭 갈라지고 이파리 말라 비 안오면 농사 포기해야할 판
비소식 없어 마늘·과수도 비상 생산량 감소 우려…지원 절실
농민신문 해남·고흥·영암=이상희 기자 2022. 3. 7
“논바닥은 말라서 쩍쩍 갈라졌고 보리 이파리는 누렇게 타버렸어요. 비가 계속 안 오면 청보리밭은 꿈도 못 꾸게 생겼습니다.”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겨울가뭄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1973년 이래 겨울철 강수량으로는 최저치를 기록하며 보리·마늘·양파 등 월동작물 생육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1∼2월 전국 강수량은 6.1㎜에 불과했다. 이는 평년 강수량인 60.8㎜의 11% 수준이며, 1973년 이래 최저치다. 지난 50년 사이 최악의 겨울가뭄이다.
특히 전남·경남 등 남부지역은 심각한 상황이다. 전남은 1∼2월 강수량이 3.8㎜로 평년(72.4㎜)의 5.2%에 불과했고, 경남은 상황이 더 나빠 비나 눈이 고작 0.4㎜ 오는 데 그쳤다. 심지어 전남 여수, 경남 남해 등에서는 올들어 1∼2월 두달간 눈은 물론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아 강수량이 0㎜를 기록했다.
문제는 가뭄에 시달리는 남부지역이 보리·마늘·양파 등 월동 노지작물의 주산지라는 점이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농작물들이 봄을 맞아 본격적인 생육을 시작하는 3월부터는 물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데 심각한 가뭄으로 작물들이 제대로 자라기는커녕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리 주산지인 전남 해남 간척지는 누렇게 타버린 보리 이파리 때문에 초록색 대신 누런색을 띠고 있고, 논바닥은 발이 빠질 정도로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는데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져 있는 상태다.
임성렬씨(60·해남군 황산면)는 “지금쯤 보리가 15㎝ 정도 자라 논이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여야 하는데 올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키가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것은 물론 군데군데 누렇게 변하기까지 했다”면서 “비료를 주고 싶어도 수분이 있어야 녹아서 뿌리를 통해 흡수될 텐데 물기가 아예 없으니 비료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3월 중에 비가 오더라도 수확량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만일 4월까지도 비가 오지 않으면 올해 보리농사는 아예 포기하고 갈아엎어야 할 판”이라고 밝혔다.
한창 생육재생기를 맞은 마늘도 극심한 가뭄에 비상이 걸렸다. 보통 3월 초순이면 월동한 누런 잎은 떨어지고 새잎이 나와야 하는데 가뭄 여파로 새잎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민호 고흥군농업기술센터 팀장은 “2월15일경이 첫 웃거름을 주는 시기인데 올해는 비가 안 와서 거름이 땅속에 스며들지 못하는 상태라 농가들이 거름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양분이 부족해서 새잎이 나지 않으니 마늘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관수시설이 된 밭에서는 2월 중순부터 매일 스프링클러를 돌려 물을 주고 있지만 문제는 관수시설이 없는 밭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고흥 관내 마늘밭 중에서 관수시설을 갖춘 곳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아무리 물을 대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서 4월까지 지금 같은 최악의 가뭄이 계속된다면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게 산지 관계자들 설명이다. 특히 마늘 재배농민들은 지금 상태만으로도 생산량이 평년에 비해 10%가량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용환 전국마늘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장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고흥군과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계기관에 관수시설 설치를 요청하는 등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밭작물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과수에도 비상이 걸렸다. 4∼5월 개화기를 앞둔 시점인데 가뭄이 지속되면 꽃이 제대로 피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고흥의 유자나무에는 가지가 마르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석류나무도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영암지역 무화과나무는 당장 관수하지 않으면 피해가 심각해질 수도 있는 상태다.
무화과 재배농가 김갑종씨(73·영암군 삼호읍)는 “지금이 무화과나무 생육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물이 부족해서 뿌리가 정상적인 상태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자랐다”면서 “빨리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제대로 나지 않아 수확량이 최소 20% 이상 감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성오 영암 삼호농협 조합장은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양수기를 최대한 동원해 밭에 물을 줘야 한다”면서 “농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농협중앙회 등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4월초까지 제대로 된 비 소식이 없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2월말 기준 가뭄 관심 지역이 13곳이었지만 4월초에는 관심 지역 61곳, 주의 지역 8곳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상청은 가뭄을 정도에 따라 정상·관심·주의·경계·심각 등 5단계로 분류해 관리한다. 가뭄 피해 현장을 둘러본 박서홍 전남농협지역본부장은 “피해 지역에 양수기와 관수용 호스 등 자재를 조기에 지원하고 이후 상황을 예의주시해 적기에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