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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영농현장 보고서] 농축산물 가격억제책 쓰는 정부…농가 영농의욕 꺾는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2-23 조회 1520
첨부파일 20220221231044894.jpg
△이종수 한국쌀전업농 충남도연합회장이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 적재된 벼 톤백 앞에서 쌀값 하락을 조장하는 정부의 쌀 역경매 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쌀 관련 5개 농민단체는 정부의 쌀 역경매 방식에 항의하며 14일 이 곳에 톤백 495개를 쌓았다.


    [2022 영농현장 보고서] ③·끝 물가상승 주범몰이 희생양

    쌀값 오를땐 비축미 즉각방출 낮으면 늑장대응·최저가 낙찰

    물가안정 명분 마늘·달걀 수입 소비부진 간과…생산기반 위협

    양파 값폭락·생산비급등 외면 “정부역할, 농업기반 안정 유지”



                                                                           농민신문 서륜 기자  2022. 2. 23


 “농축산물이 동네북입니까?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아 비축했던 물량을 풀거나 수입을 늘려 가격을 낮추려고 하니 말입니다. 정부의 이런 행태를 보고 있으면 영농 의욕은 꺾이고 농심은 무너집니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농민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은 껑충 뛴 농자재값과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인력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농축산물 가격상승 억제 정책’이 올해도 어김없이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을 위협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상승조짐 보이면 여지없이 가격압박=농축산물 가격을 억누르는 정부의 정책은 그 어느 작목도 예외없이 전방위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쌀의 경우 2020년산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이 오르자 정부는 31만t(당초 계획은 37만t)에 달하는 물량을 지난해 시장에 계속 방출했다. 이 물량은 수요량 대비 공급 부족분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양으로, 기어코 쌀값을 잡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2021년산 쌀의 경우는 거꾸로 생산량이 수요량보다 많게 되자 정부는 27만t을 시장격리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정부는 ‘최저가 낙찰’이라는 방식을 동원해 결과적으로 쌀값을 낮추고 있다. 8일 입찰 이후 조사된 15일자 산지쌀값도 이전의 하락세를 멈추지 못하고 0.1% 떨어졌다.

이종수 한국쌀전업농 충남도연합회장은 “이번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인해 농가들은 지난해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물론 농협 수매가격에도 훨씬 못 미치는 6만1000원(조곡 40㎏ 기준)에 벼를 팔게 됐다”며 “이들 농가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향후 쌀값이 낮아져 올 수확기 벼값에도 악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최저가 낙찰 방식은 물론이고 격리 물량이 적고 매입 시기도 너무 늦었다는 점은 모두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쌀값을 낮추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근거”라며 “앞으로 실시할 추가 입찰에서 개선된 방식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농민들의 투쟁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훈재 한국쌀전업농 경주시연합회장도 “쌀값이 오를 때는 즉각 반응하고, 떨어질 때는 늑장대응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가 농민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면서 “누굴 믿고 농사를 지어야 할지 암담하다”고 하소연했다.


◆무차별 ‘수입’, 허탈한 농심=다른 품목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마늘과 달걀을 선제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마늘의 경우 지난해말 1만t을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수입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일부 물량은 국내로 이미 들어왔다. 농민들은 지난해 마늘 생산량이 정확히 파악될 때까지 수입을 보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막무가내로 수입을 밀어부쳤다.

우상원 충남 서산 부석농협 조합장은 “마늘은 현재 재고가 많아 올해산 수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인데도 물가관리에 매몰된 정부가 생산량 통계만 보고 성급하게 수입했다”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소비가 줄어든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기 경남 창녕 영산농협 조합장도 “코로나19 여파로 마늘 소비가 부진해 올해 햇마늘 가격 형성도 제대로 안될 거라고 다들 걱정이 많은데 저가의 TRQ물량까지 더해지면 결국 국산 마늘값 하락은 물론 생산기반까지 허물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달걀 수입은 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지난해 정부가 주도해 수입한 물량만 3억8000만여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수천만개는 판매되지 못하고 재고로 남아 폐기 처분하는 황당한 모습도 연출됐다. 경북 경주에서 47년째 산란계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권영택씨(71)는 “산지 달걀 가격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이전 수준과 별 차이가 없는데도 달걀 수입을 강행했다가 수천만개를 폐기처분하는 것을 보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면서 “달걀 수입할 비용을 생산농가에 지원했더라면 생산성이 높아져 조기에 달걀 수급이 안정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산 값 폭락 상황엔 ‘뒷짐’=더 큰 문제는 국내산 농축산물 생산량 증가나 소비부진의 여파로 값이 큰 폭으로 하락할 때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산시 부석면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유영철씨(61)는 “마늘은 값이 오를 조짐을 보이자 햇마늘이 나오기도 전에 신속하게 수입하면서도 가격이 크게 떨어진 양파의 경우 산지폐기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정부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농민들만 속을 끓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고흥의 양파 재배 농민 홍광휘씨(70)도 “양파값이 비쌀 때는 발빠르게 나서 여기저기서 수입해 와 국내산 가격을 떨어뜨리더니, 양파값이 폭락해 햇양파 값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돼도 나몰라라 한다”면서 “농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농식품부가 수급조절이 아닌 물가관리를 하는 거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기후 영향으로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조금 오른다 싶으면 금세 외국에서 수입한 후 시장에 내다 풀어 가격을 끌어내리는 데 급급하다가도, 국내 생산이 늘어 가격이 폭락할 때는 시장격리 등으로 가격폭락을 막아줘야 할 정부가 좀체 나서지 않아 농가들의 불만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가격만 보고 생산비 폭등은 외면=농민들을 더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생산비가 아무리 올라도 농산물 가격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우유 원유가격 문제가 단적인 예다. 정부가 생산비에 연동한 원유 가격제를 폐지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려고 나서면서 사태는 걷잡을수 없이 커져버렸다. 이 제도는 음용유에는 지금처럼 정상 유대를 지급하는 대신 가공유에는 이보다 훨씬 낮은 유대를 지급하는 게 뼈대다. 이에 대해 낙농가들은 정부가 원유 생산비 폭등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물가 낮추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젖소 130여마리를 사육하는 낙농가 이찬우씨(62·충남 태안군 원북면)는 “사료값 급등으로 한달치 사료비가 2020년에 비해 300만원이나 늘었고, 퇴비 부숙도 관련해서 시설을 보강하느라 1억5000만원이 들어갔다”며 “정부가 이런 점은 도외시한 채 우유값 낮추기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안두영 대한양계협회 채란분과위원장은 “사료값 등 생산비는 물론 모든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는데 국산 달걀은 계속 한판에 3000원선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더이상 안된다”면서 “농식품부가 각종 규제 강화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농축산물값에 대한 소비자 이해도를 높이고 농가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농산물값, 물가상승 주범’ 여론 호도=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 역시 사태를 갈수록 꼬이게 만들고 있다.

경남 창원의 한 고추 재배 농민은 “국내산 생산량이 줄어 값이 살짝만 오르면 언론에서 ‘금(金)’자를 붙여 금고추니 금상추니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정부는 장단맞추듯 즉각 수입에 나서 값 폭락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 생산비가 급등한 것을 감안하면 농가 입장에선 농산물값이 올라도 오른 게 아닌데 이런 사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니 도통 농사지을 맛이 나질 않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정이 이쯤 되자 견디다 못한 농민들 사이에서는 “심을 작물이 없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농민들도 소득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가격이 좋은 작물을 좇아 영농 계획을 수립하기 마련인데 농축산물 가격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생기면서 어느 작물도 높은 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산지 재배의향 불안정성 심화는 품목별 생산 변동성을 키워 더 큰 수급불안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박성기 조합장은 “식량안보의 수호자인 농민과 기초산업인 농업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면서 “농산물 가격안정 대책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소비자들이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도록 유도하고 농업 생산기반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또한 정부의 핵심 역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안·서산·세종=서륜, 고흥=이상희, 창녕·창원=최상일, 경주=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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