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료품가격이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기름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봄철 사료·농자재 수급 대란 우려가 고개를 든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135.7포인트를 기록했다고 최근 밝혔다. 전달(134.1)과 견줘 1.1% 상승한 것으로 이른바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가격이 급등했던 2011년 이후 가장 높다. 설탕을 제외한 유지류·육류·유제품 등 모든 품목에서 가격지수가 상승했다. 곡물가격지수는 140.6포인트로 전달 대비 상승폭은 0.1%에 그치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12.5%나 뛰었다.
국제 곡물값 상승은 기후 요인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이상기후, 에너지가격 급등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남반구에서 가뭄이 계속되면서 옥수수 작황이 나빠졌고, 쌀 역시 주요 공급국에서 수확량이 저조했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쌀 구매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도 불안한 흐름을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이자 러시아·유럽간 가스관이 지나는 길목에 있다. 자칫 곡물·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뇌관’이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조지아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서방은 가입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면 NATO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지난해 11월 이후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자국 병력을 집결시키며 국제유가가 크게 출렁이고 있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4일 기준 배럴당 90.22달러로, 두달 새 30.5% 치솟았다.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주로 두바이유를 들여온다. 국제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영되므로 이달 내 국내유가 추가 상승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세 불안이 에너지·원자재 등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선제 대응에 돌입했다. 1월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경제적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이달 4일엔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 주재로 ‘우크라이나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었다. TF엔 농림축산식품부도 참여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밀·콩 등 주요 곡물에 대해 비축량을 확대하고 해외 곡물 유통망을 확보하는 등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밀 비축량은 1만4000t, 콩은 2만5000t이다.
정부는 4월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연장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휘발유·경유·LPG부탄에 대해 유류세 20% 한시 인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가공식품·외식 물가관리에 더욱 고삐를 죄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죽·김밥·햄버거·치킨 등 4대 관리품목과 떡볶이·피자·커피·자장면·삼겹살·돼지갈비·갈비탕·설렁탕 등 8대 민생품목에 대한 가격과 배달비를 각각 이달 9일과 이달말부터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조사는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맡는다.
서용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벼 재배만 하더라도 비료·농기계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국제가격 상승은 곧장 국내 농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는 만큼 이중 삼중으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곡물자급률 확대를 농정공약으로 내놓은 만큼 장기적인 곡물 수급방안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