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락시장 배추 하차거래를 둘러싸고 출하자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공사가 배추 하차거래를 강행 추진할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출하자는 적정 가격 보장 등 출하자 이익 보호 조치가 동반되지 않으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출하자 “일방적 희생 요구하는 배추 하차거래 결사반대”=가락시장 배추 하차거래는 2021년 4월 공사가 연말부터 겨울배추를 대상으로 시범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논의가 본격화했다. 공사는 출하자·중도매인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배추 하차거래 추진협의체’를 구성한 후 6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고, 2021년 12월 마지막 회의에서 2022년 2월에 하차거래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가 배추 하차거래 시행을 밀어붙이면서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등 출하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유련은 최근 “공사가 일방적인 출하자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며 “배추 하차거래 추진 이전에 농산물가격 보장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유련에 따르면 배추 하차거래를 도입하면 출하자가 부담해야 하는 유통비용은 기존 차상거래 때보다 5t 차량 한대당 최대 120만원가량 증가한다.
하차거래가 시행되면 팰릿단위 경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팰릿 임차비와 상자 포장비가 새롭게 추가되고, 팰릿 적재작업 등 인건비와 적재량 감소에 따른 운송비 증가분이 발생해 5t 차량 한대에 최대 121만7800원까지 유통비용이 늘어난다는 게 한유련 측 설명이다.
특히 하차거래를 시행하면 경매 불락 또는 유찰 때 다른 도매시장으로의 회송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도 출하자에게 큰 손해라는 지적이다.
이에 한유련은 ▲하차거래로 인한 유통비용 증가분에 대한 가격 보장대책 마련 ▲‘출하예약제’ 운영 등으로 적정 가격 보장제도 마련 ▲불락 또는 유찰 발생 때 명확한 추가 비용 처리기준 제시 등 선결과제가 이행되지 않으면 배추 하차거래에 결사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최병선 한유련 회장은 “배추 하차거래를 통한 물류 개선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라 출하자 이익 보호를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며 “출하자와 소비자에게 어떤 이익도 없는 배추 하차거래를 강행한다면 집단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 강조했다.
산지에서도 공사의 가락시장 하차거래 강행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정원 겨울배추생산자단체협의회장(전남 해남 화원농협 조합장)은 “산지농민들도 물류 개선 등 취지에는 공감하나 비용 부담 우려가 커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정책 밀어붙이기 곤란, 출하자 설득 나서야”…공사 “하차거래 시행 잠정 보류”=전문가들은 공사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양배추 하차거래 전환 때처럼 시장 내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18년 공사는 양배추 하차거래 전환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제주 양배추농가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시행을 1년 유예한 바 있다.
위태석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양배추 등 하차거래로 전환된 품목에서 출하자 편익이 얼마나 늘었는지 등 면밀한 자료를 갖고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강행한다면 진통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권승구 동국대학교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도 “출하자 반대의 가장 큰 원인은 비용 증가일 것”이라며 “제도 정착을 위해 유통비용 증가분을 지원하는 등 합의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출하자들의 강한 반발에 공사는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초 2월로 예정됐던 배추 하차거래 시행 시기를 늦추고, 출하자와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한 상황이다.
공사 물류개선팀 관계자는 “수급 조절이나 가격 보장은 공사 권한 밖의 일이라 출하자와 협의가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출하예약제 등 가용 수단을 동원해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