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 사회의 풍경을 급격히 바꿔놨다.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를 맞을 수도,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시대상에 걸맞은 혁신을 위해선 새로운 트렌드의 큰 줄기를 미리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센터장 김난도·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22> 책자를 통해 예측한 임인년 트렌드를 살펴본다.
나노사회 - 공동체적 유대 허물어져 개인만의 여가시간 선호
“코로나19 통금 덕에 회식이 줄어 너무 좋아요.”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크게 제한됐지만 젊은 직장인들은 자신만의 시간이 늘어난 것을 내심 반긴다. 기성세대가 “회식하는 재미에 회사 다닌다”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이 대목에서 우리 사회가 공동체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음을 읽어낸다.
‘나노사회’는 공동체가 모래알처럼 흩어지며 집단이 개인단위로 미세하게 분해되고 있음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접두어 ‘나노(Nano)’는 초미세 원자 세계를 일컫는다. 한국 사회의 나노화는 이미 오랫동안 지속돼온 메가트렌드지만, 코로나19가 이 흐름에 결정타를 날렸다. ‘거리 두기’라는 단어가 드러내듯 사람간 거리가 인위적으로 멀어지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트렌드’의 위상도 달라진다. 과거 트렌드란 ‘일정 기간 유지되는 다수의 동조’를 뜻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하게 세분화된 나노사회에선 트렌드가 소수 사람들이 모이고 갈라지는 작은 지류에 불과하게 됐다.
득템력 - 한정판 등 희소상품 구매 SNS 소비 과시 두드러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시대. 과시의 수단으로서 쇼핑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득템력’은 돈을 내고도 구하기 힘든 희소한 상품을 사는 능력을 뜻하는 키워드다.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개점시간 전부터 기다리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오픈런’이 대표적인 득템의 방식이다.
득템을 위해선 돈과 시간뿐 아니라 래플(Raffle·구매 자격을 추첨으로 선정하는 방식)에 참여하거나 매장 직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 기회를 확보하는 등 운과 인맥까지 필요하다. 소비자는 이런 득템의 과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플렉스(Flex·부나 성공을 과시하는 행태를 뜻하는 은어)를 즐긴다. 남들은 갖기 어려운 제품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성취감을 느껴서다. 신개념 소비 과시의 시대, 기업 입장에서 득템력의 부상은 정교한 한정판 마케팅을 통해 매출 극대화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러스틱 라이프 - 시골만의 소박한 매력 찾아 ‘논밭뷰’ 보며 여유로움 느껴
‘논밭 뷰(View)’를 아시는지. 화려한 도시의 야경 대신 논밭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게 젊은 도시인들의 힐링 방법으로 떠올랐다.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는 시골향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다. 러스틱이란 원래 ‘시골풍의’ ‘소박한’이란 뜻을 지닌 단어다. 러스틱 라이프는 촌(村)의 재발견인 셈이다.
힐링 공간을 찾아 나선 현대인들에게 촌은 더이상 시대에 뒤떨어지는 낙후된 공간이 아니다. 이들에게 촌은 여유로우며 불편함을 무릅쓰는 날것의 경험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촌캉스(촌+바캉스)’를 떠나 논밭 뷰를 감상하는 것으로 모자라 도시와 농촌 모두에 삶의 거점을 마련하기도 한다. 요즘 들어 3040세대 사이에선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 머물다가 2일은 시골을 찾는 ‘오도이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헬시플레저 - 맛 추구…즐겁게 건강관리 젤리·주스 등 기능식품 출시
전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 젊은 세대가 건강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들의 건강관리는 중장년층의 방식과는 다르다.
젊은층은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식의 고진감래형 건강관리와는 거리를 둔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즐거운 건강관리가 대세다.
‘건강(Health)’ 관리도 ‘즐거워야(Pleasure)’ 한다는 의미의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다. 건강을 위해 건강기능식품이나 다이어트식을 소비하면서도 효능뿐 아니라 맛의 만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실제 건기식의 주소비층이 젊어지자 과거 효능만을 중시하던 건기식 분야에서도 맛 요소가 강조되고 젤리·주스·필름형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얼리케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얼리케어란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신조어다. 탈모나 고혈압 등 장년기의 고민을 예방하고 미리 관리하는 젊은층이 급격히 증가했다. 얼리케어는 소비시장의 주축이 된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에 출생한 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거대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라이크 커머스 - 인플루언서, 팔로워에 힘입어 상품 직접 만들고 홍보·판매
“1000명의 진정한 팔로워만 있으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유명인)가 팔로워 1000명의 수요를 모으면 독자적 상품 기획·제작·판매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제조자가 생산해 유통업자가 판매하면 소비자는 구매한다는 식의 오랜 패러다임은 옛말이 됐다. 이제 소비자 선호, 즉 ‘좋아요(Like)’를 등에 업은 인플루언서들이 자기가 만들어 자기가 홍보하고 판다. 유통과정이 소비자들의 ‘좋아요’로부터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라이크 커머스(Like Commerce)’라고 부른다.
실재감테크 - ‘메타버스’ ‘라이브 커머스’ 등 가상공간에 현실 더한 기술
언택트(Untact·비대면)가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은 시대다.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실재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실재감테크(실재감 Tech)’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만드는 핵심 기술로 대두하고 있다.
가상공간을 현실화하는 메타버스, 소비자에게 ‘지금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을 선사하는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상거래) 등이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19 시대 언택트 트렌드 아래서 실재감은 현대사회 인류에겐 결핍이자 욕망이다. 앞으로 소비자를 붙잡을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의 핵심은 누가 더 실재감을 잘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반강제로 맞이하게 된 비대면 시대, 실재감테크의 가장 긍정적인 결과물로서 나노사회가 초래한 고립감의 해소를 기대해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