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 우려에는 눈을 감으면서 아직 닥치지 않은 달걀 가격 상승엔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산 달걀 3000만개를 이달 중 들여오기로 하면서다. 마늘에 대해서도 1만ｔ을 수입하기로 하면서 인건비가 치솟아 생산량 감소에 따른 값 상승의 기쁨을 미처 누리지 못하는 산지를 또 한번 아프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5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어 올해 안으로 미국산 달걀 3000만개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내년에도 6개월간 매월 1억개의 달걀을 8∼30%의 기본관세율이 아닌 무관세로 수입하기로 했다.
물가당국이 이렇게 달걀 수입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최근 충남 천안과 전남 영암 등 산란계농장 2곳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게 계기가 됐다. 산란계 30만마리 정도가 살처분되며 달걀값이 소폭 오르자, 당분간 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달걀 수입을 전격 결정한 것이다. 지난해 과다한 산란계 살처분으로 달걀값이 급등해 곤혹을 치른 물가당국이 올해는 달걀값이 오르기 전에 선제적으로 수입을 단행해 과수요를 없애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마늘은 생산량 감소로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내년 설 명절에 대비해 깐마늘 6000t, 피마늘 4000t 등 1만t을 수입해 가격안정을 꾀한다는 게 물가당국의 계획이다. 마늘 도매값은 9일 기준 상품 1㎏이 8410원으로, 예년 이맘때 대비 47.3% 높다. 정부가 수입을 추진하는 외국산 마늘에는 저율관세할당(TRQ)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신선마늘의 관세는 360%인데 TRQ가 적용되면 50%로 내려가게 된다.
이에 생산자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황일수 대한양계협회 전무는 “현재 수급이나 산지 가격이 전혀 문제없는 상황인데도 달걀 수입부터 결정한 것은 국내 축산업 기반을 약화시키는 행위나 다름없다”면서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 저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경수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주도해 값싼 외국산 마늘을 수입하면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될 우려가 크다”면서 “해당 수입물량이 내년 마늘 생산이 시작되기 전인 4월까지는 모두 처리될 수 있도록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홍균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쌀값 안정을 위해 도입된 시장격리제를 발동하라는 요구가 쏟아지는데도 정부가 두달 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부가 공급과잉인 국산 농산물을 외면한 채 물가 잡기에만 치중해 외국산 농산물 수입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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