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쌀 생산량이 388만2000t으로 조사됐다. 지난해(350만7000t)와 견줘 10.7% 많은 양이다. 산지에선 쌀값 하락이 현실화하기 전에 정부가 수요 초과 물량을 매입하는 등 선제적으로 나서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좀더 지켜보자”며 시장격리에 대한 판단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쌀 생산량 6년 만에 반등=쌀 수급 상황이 1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통계청이 15일 내놓은 ‘2021년 쌀 생산량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88만2000t으로 조사됐다. 한달 전 예상 전망치(382만7000t)보다 1.4%(5만5000t) 많다.
생산량 증가는 재배면적과 단수(단위면적당 생산량)가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한 때문이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73만2477㏊로 지난해(72만6432㏊)에 비해 0.8%(6045㏊) 늘었다. 재배면적이 전년 대비 늘어난 것은 2001년 이후 20년 만이다. 관심을 모은 단수는 10ａ당 530㎏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선 8∼9월 잦은 비로 전북·경북 지역에 병해충이 발생, 소폭의 감소세를 점쳤다. 하지만 경기·강원·충남·전남 지역의 작황이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483㎏)보다 9.8% 늘었다.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증가한 것은 2015년 이후 6년 만이다. 2015년 432만7000t이던 쌀 생산량은 2016년 419만7000t으로 떨어진 이후 5년 연속 줄었다. 특히 지난해 쌀 생산량은 1968년 이후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추정하는 2021년산 쌀 수요량은 357만∼361만t이다. 생산량에서 수요량을 뺀 27만2000∼31만2000t이 남아돌게 됐다. 공급 부족이었던 수급 상황이 1년 만에 공급 과잉으로 돌아선 것이다.
◆쌀 수급안정장치 발동 요건 충분히 갖춰=정부는 지난해 양곡관리법 시행령·고시를 제·개정해 ‘초과생산량(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이면 초과생산량 범위에서 정부가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쌀 수급안정장치’다. 농민들 사이에선 ‘쌀 자동시장격리제’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엔 역대 최고 수준의 흉작으로 제도를 추진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바뀌었다. 초과생산량(27만2000∼31만2000t)이 생산량의 7∼8%에 달하면서 쌀 수급안정장치 발동 요건을 2배 이상 뛰어넘은 것이다. 농민들은 제도가 마련됐고 수급 상황이 제도 추진 요건을 충분히 갖춘 만큼 정부가 서둘러 매입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쌀생산자협회가 15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를 잇따라 찾아 농민에 대한 약속을 지켜줄 것을 촉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위두환 전농 부의장은 “현재 밥상물 가가 치솟은 것은 국산 농산물 가격이 올라서가 아니라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라면서 “곡물자급률을 높이려는 대책은 마련하지 않으면서 농민에게 쌀값 인하 협박을 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최범진 한농연 정책조정실장은 “쌀 생산량이 신곡 수요량을 초과했음에도 정부가 신속히 시장격리에 나서지 않으면서 쌀값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농촌현장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미온적 대처에 산지 쌀시장 동요=최 실장의 말처럼 산지는 동요하고 있다. 제도 발동 요건이 차고 넘치는데도 정부가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서 산지 쌀시장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충남지역 한 농협 관계자는 “지역에서 많이 심는 <삼광>은 태풍 등에 따른 쓰러짐(도복) 피해가 큰 품종인데 올해 기상여건이 비교적 양호했던 까닭에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최대 30% 늘었다는 농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농민이 농사를 잘 지었다는 건 칭찬받아야 할 일인데도, 풍년의 기쁨은커녕 값 하락 그늘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민간 유통업체들은 팔짱을 끼고 있다. 쌀 생산량이 지난해와 견줘 크게 늘어날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11월 들어 40㎏들이 벼 한포대당 매입 호가를 1000원, 2000원 낮춘다는 농민들의 하소연이 적지 않다. 농협은 농협대로 불만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확기 농가 출하물량을 최대한 흡수하는 데 애쓰는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오히려 내년 단경기 때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에 매입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쌀 생산조정제’ 재개론도 고개 들어=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산지 쌀값 표만 들여다보며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 농식품부는 15일 수확기 농가의 원활한 벼 출하를 지원하겠다며 현재 3조3000억원의 벼 매입자금 지원금액을 3조40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마저도 농협이 2조1000억원에서 2조2000억원으로 1000억원 확대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또한 농가가 희망하는 피해 벼 전량을 매입하겠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 조사 결과 피해 벼 수매 희망물량은 전북 2510t을 비롯해 5082t(쌀 환산 기준)으로 파악됐다. 특히 제현율 기준을 지난해 56%에서 올해 60%로, 피해립은 40%에서 50%로 상향해 최대한 많은 농민이 피해 벼 매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그러나 시장격리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향후 쌀값 추이 등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시장격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즉시 조치해 쌀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1월5일자 산지 쌀값은 20㎏당 5만3851원(80㎏ 환산 때 21만5404원)에 머물렀다. 한달 전인 10월5일 기준 5만6803원에 견주면 5.2% 하락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급 과잉 구조가 지속돼 만성화한다면 어렵사리 이뤄놓은 쌀값 회복은 물 건너가고 농가소득 제고는 더욱 요원하다는 것이다.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쌀 생산조정제)을 꾸준히 추진해 재배면적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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