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구좌읍 이석근씨 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외국인 근로자가 ‘레드향’ 나뭇가지를 다듬고 있다. 그의 뒤로 이씨가 수확을 포기하는 바람에 방치된 상추가 보인다.
[탐사기획] 외국인 근로자 고용제 대해부
[4부] 해마다 치솟는 인건비 - 농가 경제 비명일당
코로나 전보다 임금 급상승 내년 최저임금도 올라 걱정
불법체류자 몸값 천정부지 월급 300만원 요구하기도
인건비 부담 농사 포기 속출 일손 덜 드는 작목 전환 늘어
농민신문
양구·횡성=김윤호, 안성·남양주=최문희, 제주=심재웅, 논산=서륜 기자
2021. 11. 08
“인건비 부담이 예전에 비해 심해졌는데 내년에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대체 농사를 어떻게 지으란 말인가요.”
강원 양구에서 수박과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김모씨(64)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건비를 묻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계절근로 비자(E-8)로 입국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계절근로자 한명을 데리고 어렵사리 농장을 꾸려나가는 형편이다.
김씨는 “이미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에다 식대까지 별도로 지급하기 때문에 현재 외국인 근로자 한명당 한달에 230만원가량을 준다”며 “이 정도면 전체 경영비의 3분의 1 이상이 인건비로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5%가량 더 오른다고 하는데 농촌 고령화로 인해 임금근로자를 쓰지 않으면 주변에 일할 사람이 없어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단기간 많은 일손이 필요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는 더욱 힘든 상황이다. 인건비 부담이 크지만 제때 수확해야 해 어쩔 수 없이 높은 임금을 주고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경기 안성 인삼농가 이모씨(56)는 최근 인력중개업체에 외국인 근로자 2명을 요청했다. 그런데 중개업체서 요구한 일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전보다 5만원이나 오른 14만원이었다. 2명을 20일간 고용한다고 했을 때 이전보다 무려 200만원이나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씨는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전체적으로 오른 상태라 더 낮은 임금의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고용했다”며 “인삼값은 바닥을 치는데 인건비는 천정부지니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허탈해했다.
농가들이 느끼는 인건비 부담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의 ‘2020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해 농업경영비는 2018년 2283만원, 2019년 2417만원, 지난해 2421만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건비 상승이 농업경영비 증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농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한 ‘웃돈 거래’도 횡행하고 있다. 제주의 한 농민은 “겨울채소 파종이나 감귤 수확 등으로 인력 수요가 몰리면 일당이 15만원을 웃도는 것은 예삿일인데 최근엔 여기다 목욕비 명목으로 1만∼2만원을 따로 더 얹어주는 경우도 있다”면서 “대놓고 임금으로 지급하면 시세 상승을 부추긴다는 주변 농가들의 눈총을 받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강원 횡성에서 밭농사를 짓는 송모씨(47)도 “인력을 구하려 용역업체에 전화하면 ‘품값 올랐다’는 말만 하면서 예약도 제대로 안 잡아준다”며 “알고 보니 인근 감자농가들이 최근 외국인 근로자 일당을 15만원까지 올려줬다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덩달아 불법체류자의 몸값도 하루하루가 다르다. 합법 외국인 근로자를 찾지 못해 불법체류자라도 고용하려는 농가들이 늘고 있어서다. 경기 남양주에서 시설채소농사를 짓는 이모씨(49)는 “요즘 불법체류자 몸값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라며 “과거 1명당 한달에 150만∼180만원 수준이었던 인건비가 최근엔 250만∼300만원까지 올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한 이웃농가는 불법체류자가 월급 300만원을 요구하자 결국 고용을 포기하고 가족을 총동원해 작업했다”고 전했다.
가중되는 인건비 부담으로 영농규모를 줄이거나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서 8595㎡(약 2600평) 규모로 상추농사를 짓는 이석근씨(60)는 최근 농사를 포기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겨진 땅을 놀릴 수 없어 이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난해 상추를 키우던 자리에 만감류인 <레드향> 묘목을 심었다. 이씨는 “만감류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것을 알지만 일손이 조금이나마 덜 드는 작목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2018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 4명을 고용해 농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고용규모를 대폭 줄여 1명만 데리고 있다. 당시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었지만, 지금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현재 일하는 근로자에게 식비와 숙박비를 제외하고 한달에 220만원 정도를 주고 있는데 내년 재계약을 하게 되면 얼마를 더 올려줘야 할지 걱정”이라며 “농민들이 일손이 덜 드는 작목만을 찾게 되면 제주만의 농업다양성이 사라져 지역경제까지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농가들이 일손을 못 구해 영농규모를 줄이는 현상은 딸기 주산지인 충남 논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논산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이 지역 딸기 공동선별출하회 회원들의 평균 재배규모를 조사한 결과 2020년 1인당 비닐하우스 5.5개동에서 올해는 5.1개동으로 약 7% 감소했다.
[농민신문] 가락시장 배추 하차거래 시행 눈앞…중도매인 반발로 난항 
[한국농정신문] 극심한 ‘요소’ 품귀, 비료 공급 차질도 불가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