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금식 제주 서귀포 안덕농협 사계지점장(오른쪽)과 이승남씨가 이상고온 현상으로 피해가 발생한 마늘 뿌리를 살펴보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상고온 여파로 잎마름병 등이 발생해 말라죽은 마늘 줄기.
고자리파리·잎마름 피해 속출 생산량 감소·상품성 하락 우려
농가 “약제비·금융 지원 절실”
농민신문 서귀포=심재웅 기자 2021. 11. 05
제주 마늘농가들의 시련이 끊이지 않고 있다.
9월엔 예년보다 길었던 가을장마 탓에 파종 적기를 놓쳐 마음을 졸였다(본지 10월6일자 5면 보도). 그게 엊그제 겪은 일 같은데 최근엔 연일 지속된 이상고온 현상으로 병충해를 입은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제주 마늘 주산지인 서귀포 대정읍·안덕면 중에서도 파종이 비교적 적기(8월말∼9월 중순)에 이뤄진 농가에 피해가 집중됐다.
2일 오후 찾은 안덕면 일대 마늘밭은 노랗게 말라버린 줄기가 바람을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덕면 사계리에서 약 1만4876㎡(4500평) 규모로 마늘을 재배하는 이승남씨(73)는 “8월말 파종 후 가을 추위에 대비해 10월초 멀칭작업을 했다”며 “그런데 난데없이 기온이 오르면서 비닐 안이 고온다습해져 마늘 뿌리가 대부분 썩어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뿌리 썩는 냄새에 고자리파리가 꼬여 주변에 알을 낳고, 유충들이 뿌리를 갉아먹으면서 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줄기가 힘없이 주저앉거나 말라버렸다”고 설명했다. 현장을 살핀 허금식 안덕농협 사계지점장은 “긴 장마로 땅이 수분을 많이 머금은 상태에서 고온의 날씨가 지속돼 피해를 키웠다”면서 “멀칭작업을 마친 농가의 피해가 유독 심한 편”이라고 전했다.
실제 제주지방기상청의 서귀포지역 10월 날씨 관측자료에 따르면 최고 기온이 25℃ 이상인 날이 모두 14일에 달하며, 5일엔 수은주가 28.5℃까지 올랐다. 지난해 같은 달 가장 높게 측정된 기온이 24.7℃였던 것에 미루어볼 때 올해 고온현상이 유독 심했음을 알 수 있다.
농가에서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긴급 방제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효과를 보려면 최소 3번 이상 방제를 실시해야 하는데, 약제값 부담에 일손마저 모자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이씨는 “이번 피해는 단순 재해가 아니라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으로 느껴질 정도”라며 “도나 농협은 약제비와 금융 지원 등 피해 구제책을 하루빨리 시행해 농가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오전에 찾은 인근 대정지역의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정읍 동일리에서 마늘농사를 짓는 강명심씨(58)는 “농사를 시작한 이래 10월에 고온 피해를 입기는 처음”이라면서 “농장 절반이 뿌리썩음병이나 고자리파리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상기후로 생육에 차질을 빚으면서 생산량 감소와 상품성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승태 대정농협 유통센터 사업소장은 “도내 전체 마늘 재배면적의 최대 30%가 고온 피해를 입은 걸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가을장마로 파종이 늦어진 농가가 많은 데다 적기 파종한 농가마저 고온현상에 피해를 입어 올해 <남도종> 마늘의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허영윤 과장도 “<남도종>은 보통 지름 5㎝ 이상을 상품으로 치는데, 올해는 지름 4㎝ 이하인 중품이 주를 이룰 것 같다”고 예상했다.
한편 갈수록 심해지는 인력난에 자연재해까지 잇따르면서 농가가 마늘농사를 포기하는 등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 사업소장은 “최근 마늘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추세인데도 고된 작업과 부족한 인력 탓에 재배면적은 오히려 줄고 있다”면서 “농가들이 비교적 일손이 덜 드는 채소류로 작목을 전환하면 해당 작물의 생산과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철 대정농협 조합장은 “제주 마늘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영농작업 기계화가 절실하다”면서 “지역 영농환경에 적합한 파종기 개발 등 기계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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